[커피로드] 케냐의 블랙골드, 커피
나이로비의 아침은 차와 사람이 뒤엉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질서하지만 역동적인 모습에서 케냐의 희망찬 미래를 본다.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광활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랜 꿈으로 가슴 속에 묻어두고만 있었던 이번 탐험의 첫 도착지는 케냐이다. 넓은 초원. 작열하는 태양, 그곳은 질 좋은 커피가 날 수 밖에 없는 신이 선택한 땅이다.
동아프리카의 관문답게 나이로비 시내는 복잡하다. 자동차의 심한 매연이 턱턱 호흡을 가로막는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차도를 마구 가로질러 다니는 풍경이 1960년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냐의 커피산업
도착 다음 날, 새벽부터 분주한 나이로비Nairobi를 떠나 티카Thika1)의 커피농장을 찾아 나섰다. 티카 커피농장은 케냐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곳으로, 케냐 커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정부가 작은 농가들을 대단위로 묶어 국영단지를 만든 것은, 커피가 이 나라 제 1의 수출상품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
케냐에서 처음 커피가 재배된 장소는 1893년 인도양과 인접한 해안지방 부라Bura다. 그 뒤 1904년 수도 나이로비 인근 키쿠유Kikuyu족 거주지에서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이른 시기인 1930년대 영국의 식민지 정부에 의해 커피위원회CB; Coffee Board가 설립되면서 품질관리, 인허가 관리 등 본격적인 커피 수출 업무를 주도하게 된다. 잇따라 케냐 커피경매장The Kenya Coffee Auctions이, 1947년에는 커피 판촉위원회CMB; Coffee Marketing Board가 설립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기구통폐합과 법령 개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1960년 케냐 커피위원회CBK; Coffee Board of Kenya를 발족시켜, 오늘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케냐 커피는 종자가 번식하는 데 중요한 변수인 온도와, 나무가 자라는 생장요소인 강우량, 일조량, 온도, 풍량, 토양 등이 적절히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다. 한 때 국제 커피가격이 내리면서 농가와 기업들이 수차례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하늘이 선물한 자연환경과 케냐인의 노력은 케냐 커피를 최고 품질로 만들었다. 케냐 커피산업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아프리카를 대표한지 오래다.
나이로비에서 북동쪽으로 38킬로미터를 두 시간 남짓 달렸다. 고도계가 해발 1520미터를 가리킨다. 나이로비의 고도가 해발 1728미터임을 감안하면 저지대라 할 수 있지만, 커피 재배지로서는 고지대다. 남쪽의 응다루구 강Ndarugu River으로부터 얕은 경사를 이루며 넓게 펼쳐져 있는 이곳 티카 커피농장은 풍부한 물 덕분에 커피 외에도 차나 화훼류같은 원예작물이 잘 자란다. 게다가 수도와 인접해있고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아프리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전력 사정도 우수하다. 커피 재배에 딱 알맞은 지역인 것이다.
케냐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티카 커피농장. 풍부한 물과 질 좋은 흙 덕분에 이곳은 커피 생산의 요지로 떠올랐다.
특히 나를 정신없이 빠지게 한 것은 토양이다. 유구한 세월을 두고 강에서 차곡차곡 쌓인, 눈부시게 찬란한 붉은 색의 충적토沖積土다. 지구상에서 가장 질 좋은 커피가 난다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에서도, 하와이 코나지역에서도 이런 흙은 볼 수 없었다.
커피 재배에서 기후와 기온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흙이다. 좋은 흙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때는 인적 드문 동네 야산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흙을 찾기도 했는데, 그러다 바위 틈에서 한줌의 고운 부엽토腐葉土2)를 발견했을 때의 득의양양함이란! 그런데 티카 농장에는 아름답고 질 좋은 붉디붉은 흙이 천지다. 처음에는 부럽다가 나중에는 슬며시 서럽기까지 하다.
티카 커피농장을 찾아서
티카 커피농장의 커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꽃이 지고 난 후 커피체리가 열리는데 이 체리가 빨갛게 익었을 때 수확해서 생두를 얻는다.
티카 커피농장의 관리 정도는 우수했다. 30년 넘은 오래된 커피나무들이 토양을 꽉 움켜쥐고 잘 자라고 있었다. 땅은 평평하지만 나무 사이 거리가 일정하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원두커피의 종자인 아라비카Arabica 종이 눈에 띈다. 아라비카종은 고급 원두의 재료로, 단맛, 신맛, 감칠맛이 뛰어나고 카페인의 양이 적다. 이와 반대되는 종으로 로버스타Robusta가 있는데, 아라비카종에 비해 쓴 맛이 강하고 카페인 함유량도 많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해 인스턴트 커피 등을 만들 때 사용한다. 로버스타는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쓰다. 우리는 ‘커피’하면 유럽을 떠올리지만, 사실 프랑스 커피는 질이 좋지 않은 편이다. 커피가 유럽으로 퍼져나간 시기는 유럽이 서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두면서다. 이때 서부 아프리카에서 주로 재배하던 로버스타가 프랑스로 넘어갔고, 쓴 맛을 감추려다 보니 우유가 잔뜩 들어간 카페오레 같은 커피가 생겨났다.
오른편 멀리 한 무리의 농부가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다. 급히 차를 세웠다. 얼른 보아서는 커피나무의 발육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일조량이 매우 강한데도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셰이드 그로운Shade Grown은 찾아볼 수 없다. 셰이드 그로운은 일종의 유기농 커피라 말할 수 있다. 커피는 보기보다 많은 햇빛이 필요하지 않다.
커피재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지치기에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가지치기를 맡는다.
야생커피는 열대우림 사이에 자생하고 있어 경우가 다르지만, 새로운 경작을 하는 곳에서는 바나나 나무처럼 잎이 넓은 나무 옆에 커피를 심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체리의 양보다는 질을 높이는 방법이 셰이드 그로운이다. 이렇게 하면 본래 있던 나무들을 다 없앤 뒤 커피밭을 만드는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또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환경에도 큰 도움을 준다.
티카 커피농장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커피를 재배한다. 고랑에 풀과 낙엽을 놓고 퇴비로 활용한다.
5년째 이 곳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피타 투오Pita Thuo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곳에서 일한지는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집 앞에서 커피농사를 해왔던 터라 커피재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했다.
이곳 티카의 대부분 농가에서는 앞마당이든 뒤뜰이든 소규모로 커피를 경작하고 있다. 5월과 11월에 커피를 수확해 1차 가공, 즉 펄핑3)을 마치면 우리나라 농협과 같은 협동조합에 보내져 공동가공을 한다. 케냐의 70만 커피농가가 이 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커피는 돈을 벌기 위해 재배되므로 정작 이곳 농부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피타 투오는 20여 명의 남녀와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농장 가까이 사는 오랜 이웃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마침 가지치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 작업은 나무의 모양을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지치기의 목적은 좋은 과실이 많이 열리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부러지거나 약해진 가지를 없애고, 서로 얽힌 가지를 정리하며, 체리가 달릴 가지 수를 제한하기 위해 잘라내기도 한다. 가지 수를 제한하는 이유는 가지 끝에 새로운 가지가 많이 생기면 열매가 높은 위치에 열리고 오히려 밑부분이 비기 때문이다. 열매가 골고루 맺히지 않고 한쪽에 치우치면, 맛이나 품질에 좋지 않다. 또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커피 나뭇가지만 무성하게 자라서 열매에 충분한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는다.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가하와, 케냐인의 땀과 희망
가하와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농부들. 열심히 일하다보면 언젠가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케냐인들에게 커피는 삶의 고충이자 희망이다.
케냐에서는 커피를 그들의 언어인 스와힐리Swahili어로 ‘가하와Kahawa’라 부른다. 고된 일을 하며 부르는 노동요를 한 곡 불러달라고 청했더니 주저 없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들려준다. 커피를 재배하며 부르니, 바로 ‘가하와의 노래’다.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거침없다. 뜻은 잘 통하지 않지만 우리도 함께 흥얼거리면서 절로 신이 났다. 노동의 고통에서 오는 애절함이야 짙지만 슬픔으로만 가득차지는 않았다.
케냐 농부들은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 반까지 일하지만 대우는 썩 좋지 않다. 하루 100케냐실링의 돈을 받는데, 79케냐실링이 약 1달러이므로 우리 돈 10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우리 눈으로 봤을 때는 100케냐실링은 큰돈이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돈이다. 이마저 벌지 않으면 구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다.
케냐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인근 마을로 이동하는 길,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이 그림처럼 늘어서 있다.
하늘은 푸르고 흙은 붉다. 까만 피부의 케냐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는 자연 그 자체다. 한두 소절만을 부탁했지만 노래는 쉽게 끊이질 않았다. 노랫말을 물어보니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커피농장은 즐거움과 고난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간절한 희망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아프리카식 샌드위치와 진한 케냐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시골 농가를 찾아 나섰다. 아프리카 커피산지에서 그들이 어떻게 커피를 마시는가는 오래된 궁금증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커피를 선물 받아 맛을 봤지만 기대 이하였던 터라, 어떤 도구로 어떻게 커피를 만들고 무얼 섞어 마시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림 같은 언덕길 위로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가 늘어서 있다. 동네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뿌연 황토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고물차를 따라온다. 수줍음 많은 한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도착한 집이 아담하다. 어둡고 답답한 부엌 한쪽 구석에 아궁이가 마련되어 있고 플라스틱 통과 냄비 서너 개가 놓여있다.
커피를 청하자 흙탕물에 오래된 커피와 정제되지 않은 설탕을 넣고 끓이는 케냐 아낙. 수확한 커피는 모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케냐인들은 정작 질 좋은 ‘케냐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처음에는 깜깜해서 보이지 않았으나 카메라 플래시가 들어오자 플라스틱 물통에 담긴 물의 상태가 확연히 드러났다. 흙탕물이다. 커피를 언제 사두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주 곱게 갈아져있어 가루 그대로 냄비 속으로 들어가는 건 확실했다. 생각보다 물이 빨리 끓었다. 물은 10인분 정도로 냄비에 가득한데 커피는 5인분쯤 봉지에 남아있어 통째로 붓는다. 설탕은 한국식 계산대로라면 20인분 정도로 가득 넣는다. 끓인 흙탕물과 오래된 커피, 그리고 넘칠 만큼 넣은 정제 안 된 굵은 설탕. 마시지 않아도 상상이 가지만 눈 찔끔 감고 마셔야 했다. 이걸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커피 잔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마당은 동네 아낙들과 아이들로 장사진이다. 모두 우리와 커피 잔을 쳐다보고 있다. 벌컥 한 잔을 다 마셨다. 나는 물론 일행 모두 맛있다며 “타무Tamu”를 외친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듭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해도 아이들은 차 뒤꽁무니를 쫓아 달려오며 그들만의 작별인사를 건넨다.
18세 미만의 아동은 고용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오히려 아프리카의 심각한 아동노동 현실을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악수도 거듭, 안녕이라는 인사도 거듭…… 그것도 모자라 마을 어귀를 한참 지난 곳까지 노래 부르며 차 뒤꽁무니를 따라온다.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돌아가는 길가에 자랑스러운 듯 서있는 팻말의 글귀가 한참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법에 따라 18살 미만의 어린아이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