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케냐, 카렌 블릭센 박물관
카렌 블릭센이 살던 음보가니 하우스. 그녀는 이곳에 10년 넘게 살면서 커피농장을 경영했다.
덴마크 작가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카렌 블릭센(1885~1962)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실제 아프리카에 살면서 십 년 넘게 커피농장을 경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썼다. 여기서 카렌은 아프리카의 삶을 시적으로 형상화했고 그 당시 유럽에서 불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유럽과 미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영화를 떠올리며 카렌 블릭센 박물관을 찾는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을 찾아
1917년부터 카렌의 소유였던 음보가니Mbogani 하우스는, 고약한 병마에 시달리다 커피농장 재건의 희망마저 잃은 그녀가 1931년 아프리카를 떠날 때까지 줄곧 살았던 곳이다. 케냐 스와힐리Swahili어로 “숲 속의 집”이라는 뜻답게 과연 아름다운 숲 속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사방은 온화한 기운이 감돌고 숲 속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잘 정돈된 정원 위로 때마침 시원스레 소나기가 내린다. 풀잎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오래 전 보았던 영화의 아련함을 잠시나마 떠오르게 한다. 투박하게 생긴 후원의 밀스톤Millstone 테이블에 걸터앉아 멀리 빗속에서도 푸르게 보이는 응공 언덕Ngong Hills을 바라본다.
좁은 현관을 통해 박물관에 들어선다. 내부 장식은 수수하지만 세월의 흐름에도 단단한 느낌이다. 60여 평 공간에 침실 두 개, 거실, 식당, 사무실 그리고 서재가 박물관 내부의 전부다. 윤기 나는 책상, 손 때 묻은 코로나 타자기, 너무 오래 튼 탓에 낡아져 나중엔 말 울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던 축음기, 가지런히 꽂혀 한쪽 벽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두꺼운 책들은 그녀가 고뇌하는 작가였음을 묵묵히 전하고 있다. 아담한 아파트로 피천득 선생님 댁을 찾아 뵈었을 때, 텅 빈 서가를 보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책이란 누군가 읽으라고 있는 게지, 책꽂이에 꽂아두라고 있는 건 아니지요” 라시며 그나마 몇 권 되지 않은 귀한 책을 내게 선물하시던 그 기억이 겹쳐진다.
음보가니하우스의 내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묵직한 책들이 카렌의 지적인 면모를 증언한다.
집안 곳곳에는 카렌의 옛 사진들이 걸려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침대며 가구 같은 생활 도구들을 보며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정작 내게 중요한 커피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고개만 갸우뚱거린다. 건물 입구를 들어서며 보았던 막 꽂이 핀, 심은 지 채 몇 년 안 된 키 작은 커피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커피 농장을 막연히 동경해온 스스로를 생각하며 뒤늦게 실소 짓는다.
커피로 꿈꾸었던 희망찬 미래
카렌은 처음 600에이커로 시작했다가 1차 세계대전으로 커피가격이 상승하게 되자 고국 덴마크 가족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부추겼다. 결국 6,000에이커의 커피농장을 일구게 되지만, 그녀는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딘 후 17년 동안 모질게 커피농사에 매달렸음에도 단 한 해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결국엔 실패하여 아프리카를 떠나게 된다. 이 곳 응공 지역이 커피재배지로서 부적합하다는 사실은 먼 훗날이 되어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대지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커피나무는 어쩌면 그녀의 삶과 닮아있기도 하다. 결혼해 아프리카까지 왔지만 사랑은 곧 스러지고 오직 그녀만 남지 않았던가. 아프리카 너른 대지에 누렇게 말라가는 커피나무를 쓸쓸히 바라보았을 카렌, 결국 카렌 역시 아프리카를 떠나고 만다.
나이로비 도심으로부터 남서쪽으로 20km 남짓 떨어져 있는 이곳의 해발고도는 1700m를 넘나든다. 아라비카 종이 잘 자라는 고도가 900m- 1800m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나이로비 북쪽 지역에 비해 건조해 재배가 쉽지 않다. 불규칙한 강우와 척박한 강산성 토양이 본시 병충해에 약한 아라비카종 커피나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 지 농사일에 문외한이었던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으리라. 땅의 깊이나 물빠짐, 수습水濕, 나무간 거리, 가지치기 그리고 거름까지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커피재배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셈이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손꼽는 것이 하와이에서의 커피농사라는 얘기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적도의 햇살은 아직 뜨겁지만 곧 붉은 노을 빛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조바심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당시로서는 하루 종일 불씨를 살려두어야 하는 까닭에 화재를 염려하여 10여 미터 떨어진 한쪽 구석에 따로 부엌을 지어두었다. 호기심 가득한 발길을 회랑回廊으로 돌린다. 예닐곱 평 되어 보이는 부엌은 소박했다. 남작부인으로서 부엌일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그녀가 과연 커피를 직접 끓이는 일을 얼마나 자주 했을까, 아니 해보기는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띈다. 눈에 익숙한 고정식 그라인더 세 대가 탁자 모서리에 단단히 매달려있다.
카렌의 부엌에서 발견한 고정식 그라인더 세 대
몇 해 전 영국 여행 중 런던 어느 경매장에서 이들과 똑같이 생긴 빨간색 손잡이가 유난히 아름다운 낡은 그라인더 한 대를 산 기억을 떠올린다. 커피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다 좋다는 생각에 눈길 가는 그라인더 한 대를 샀다. 둔탁한 영국식 발음과 그의 정직한 눈빛을 보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리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다. 후에 박물관 개관준비를 하며 아무리 들여다봐도 커피 그라인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듯해 자료 조사를 했다. 틀림없는 그라인더이긴 하지만 커피그라인더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결국 개관 전시물에서 제외시켰다.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러지 않은 것을 너무 잘한 일리라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밖에서 할 일없이 서성대고 있는 안내원을 불러 어떻게 쓰이는지 물었다. 당근 같은 야채류, 후추, 고기 등을 갈 때 쓰는 것이라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또렷한 어조로 커피를 갈 때도 쓰인다고 한다. 그때그때 갈아서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 그라인더로 쓰이는 것은 분명했다. 짧은 예단에 또다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다.
카렌 블릭센 농장에 있던 밀링 기계. 밀링 기계에서는 과육을 벗기는 펄핑 과정과 파치먼트를 제거하는 훌링 과정이 모두 이루어진다.
많은 관광객들이 무심히 지나칠 드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숲 속 길로 접어든다. 덤불 속으로 겨우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한적한 오솔길이 나 있다. 길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주변은 고요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채 진정하기도 전에 덤불 숲 속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 사이로 붉게 녹슨 집채만 한 고철덩어리가 근엄하게 버티고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국산 커피 밀링 기계와 수동식 펄핑 머신은 80여 년 전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붉게 익은 커피체리가 몸집 큰 구식 펄핑 머신을 통과하며 내는 삐거덕 소리, 과육은 뒤쪽으로, 빈은 앞쪽으로 갈라지며 주변을 감싸며 내뿜는 향긋함과 끈적거림, 그사이를 오가는 키쿠유Kikuyu족들의 떠들썩한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그들의 몸짓이 눈에 선하다.
케냐의 가하와
카렌의 커피농장에 자리한 스위도하우스.
케냐인들이 가하와“Kawaha”라 부르는 커피는 케냐의 주력 수출 상품이다. 케냐 커피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때는 18-19세기였다. 해상경로를 통해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1893년에, 또 다른 경로를 통해 프랑스 선교사들이 1708년 예멘의 아덴 항으로부터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Island Reunion(과거 Bourbon Island)에 옮겨 심은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다시 탄자니아를 거쳐 1897년에 나이로비 인근에 옮겨 심음으로 비로소 케냐 커피가 탄생하게 되었다.
케냐 커피는 종자가 번식하는데 중요한 변수인 발아온도와 나무가 자라는 주요 요소인 강우량, 일조량, 온도, 풍량, 토양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케냐 커피산업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아프리카를 대표한지 오래다.
800년경 에티오피아 짐마에서 발원하여 케냐에 이르는 커피의 이동을 들여다보면, 인류의 역사가 철학가의 사상이나 정치가의 이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욕구에 의해 모색되고 변화되어왔다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갖는다. 국경을 이웃한 두 나라 에티오피아와 케냐는 커피라는 공통의 산물을 갖게 되는 데 천 년이나 걸렸다. 처음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한 커피는 아랍과 유럽을 거친 뒤에야 케냐에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두 나라는 전혀 다른 종자의 커피를 재배하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나이로비의 ‘자바하우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익숙한 커피 체인점은 지친 발걸음을 쉬게 한다.
나이로비 도심은 여전히 북적인다. 많은 사람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지금 이 순간을 담는다. 커피 한 잔이 간절하다.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나이로비 자바 하우스가 보인다. 모던한 감각의 널찍한 두 개 층이 모두 만석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멋진 이태리산 에스프레소 기계가 바 한가운데서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젊은 바리스타들은 분주히 카푸치노를 만든다. 퇴근 후의 저녁시간이라 사람들이 많기도 하겠지만 이미 나이로비의 커피소비 행태는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다만 도시와 농촌 사이에 격차가 있고 많은 이들에게 일반화 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더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 반 잔을 넣은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나이로비 저녁거리를 걷는다. 길 건너로 자그마한 낡아 보이는 케냐식 커피점이 보인다. 어김없이 거대 자본의 위력에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케냐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케냐, 잠보(Jambo,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