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탄자니아의 축복, 킬리만자로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탄자니아의 축복, 킬리만자로 탄자니아의 원두가 우리의 커피잔에 담기기까지

모시의 커피점

빗속의 킬리만자로를 고물 지프로 오르는 일은 그리 수월치 않다. 잠시 쉴 요량으로 길거리 커피점 앞에 차를 세운다. 말이 커피점이지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가정집 한 귀퉁이 열 평 남짓 공터에 장작불과 냄비, 설거지용 물통 네 개가 전부인, 의자도 없는 그야말로 노천 커피점이다. 물만이라도 깨끗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강수량 풍부한 이곳 모시지역에서도 담수시설이 없으니 아프리카 여느 곳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주인은 커피 원두가루와 굵은 설탕을 한 움큼 집어넣어 국자로 저었다. 냄비에 생강을 잘게 썰어넣고 물을 끓인 다음 커피 찌꺼기와 생강을 거름망으로 걸러낸다.

완성된 생강커피. 우리 입맛에는 커피보다 생강차에 더 가까웠다.

바닥에는 얇게 채 쓴 생강이 끓고 있다. 그 위로로 곱게 갈린 커피원두 가루를 듬쑥 집어넣는다. 정제되지 않은 굵은 설탕도 한 움큼 손에 담아 집어넣는다. 한참을 기다린 후 중국산이라는 표기가 선명한 오렌지 빛 플라스틱 거름망에 거른다. 커피찌꺼기 조금과 생강이 걸러진다. 특별히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잔이라며 이빨 빠진 잔에 가득히 걸쭉한 커피를 담아내어 놓는다. 생강커피Ginger Coffee이다.

이곳 탄자니아 북부지역에 오래 전부터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전통 커피로, 기호로서의 음료가 아니라 약리효과를 내는 건강음료 커피이다. 쌉쌀함과 쓴맛 그리고 단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연거푸 두 잔을 청해 마신다. 얼떨결에 접한 생강커피이지만 연신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던 커피점 여주인의 순박한 모습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을 특별한 커피다.

모시 협동조합

모시협동조합의 창고는 이미 커피 수확 철이 지나 한가하게 비어있었고, 책상 위에 전표들이 널려있었다.

낡은 지프차에 무거운 몸을 옮겨 싣고 모시 협동조합(Moshi Farmers Cooperative Union)으로 향한다. 이 곳 협동조합은 모시 지역의 커피 농가들에 새로운 재배기술을 지도해 수확을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이 수확한 생두를 모아 대규모 판매상이나 수출회사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수확 철이 지난 탓에 협동조합 창고는 휑하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낡은 책상 위의 전표들은 그 책상이 지닌 힘을 느끼게 한다. 책상 앞에서 전표를 받아 쥐며 환하게 웃을 농부의 미소를 떠올려본다.

파치먼트 상태의 커피를 메고 들어온 농부는 육중한 저울 위에 마대를 올려놓는다. 그 짧은 순간, 조금이라도 더 무거워지길 바라며 슬그머니 눈감아버린 나무 부스러기며 잔 돌멩이들이 제 값을 해주길 기도할 것이다. 농부가 한 마대의 커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가?

평평하고 햇빛이 많이 들지 않는 비옥한 땅을 골라 고이 모셔두었던 커피씨앗을 뿌린다. 그 위로 그늘 막을 따로 치기도 한다. 물주기를 거르지 않고 싹 트기를 기다린다. 6개월여를, 길게는 1년여를 아이처럼 보살펴 건장한 체구가 되면 넓고 험한 산비탈로 이식한다. 자리잡기로 몸살을 치른 커피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세 살이 넘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다. 짙은 재스민 향의 흰 꽃이 일주일쯤 피었다 지고 나면 비로소 눈부시게 붉은 커피체리를 맺는다. 이때부터가 농부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하는 때이다.

농부에게 있어 커피나무가 어릴 때에는 나무를 키우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 나무들이 몇 그루 채 되지 않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농부들이 커피나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병충해와의 싸움이다. 나뭇가지가 커지고 잎이 무성해져 커피열매가 맺히게 되면 수많은 병충해와 싸워야 한다. 병충해는 대개 농장 안에서 겨울을 나며 전염과 번식을 되풀이하는 까닭에 해마다 그 밀도와 피해가 누적된다.

오늘날에야 방제기술이 발달하고 획기적인 신 농약이 개발되어 대개는 방제가 된다고 하나, 이는 형편이 넉넉한 먼 나라 얘기가 아니겠는가. 가난한 만큼 농부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잡초제거, 가지치기, 거름주기, 물주기, 햇빛가리기 등이 모두 농부의 몫이다. 수확의 기쁨도 잠시, 펄핑Pulping과 까다로운 건조를 거쳐야 겨우 파치먼트가 된다. 그것도 8월부터 2월까지에만 할 수 있는 벌이이다.(Tanzania Moshi Machame 지역)

게다가 무게를 재고 난 뒤에 곧바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차곡차곡 영수증이 쌓이고 트럭에 한 차 가득 동네 사람들의 커피마대가 찰 때쯤이면 협동창고에서 대형 커피밀Coffee Mill로 보내진다. 한참을 지난 후에 이곳으로부터 돈을 받고 또 한참을 지난 후에 그 돈은 농민들에게 전해진다. 왜 이렇게 늦게 주느냐며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오던 일이고, 다른 곳과 비교해 볼 방법도 없으니 달리 생각해볼 이유도 그들에겐 없다.

케냐 티카Thika 지역과 모시Moshi지역의 커피 생산 과정이 확연하게 비교된다. 티카에서는 자본의 논리가 우선된다. 커피농장은 초기단계에서부터 잘 계획되어있다. 규모의 경제 개념을 적용한 대형화 농장, 생산성과 비용절감을 동시에 꾀한 농장과 밀의 일원화, 기계화를 통한 작업능률 향상과 생산성을 고려한 수간거리, 치밀히 사전 계획된 관수시설 등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장점들이다. 이에 더하여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 시비법의 계량화 작업을 비롯해, 다양하고 적합한 커피품종의 선정 등은 보이지 않는 오랜 고난 끝에 얻어낸 연구 성과다. 이들의 조화는 오늘날 커피시장에서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모시협동조합으로부터 받은 선물. 모시협동조합의 아라비카 커피종자와 달력

내게 마리아는 한쪽 구석에 따로 보관중인 마대를 풀어 커피 종자 한줌을 건넨다. 탄자니아 모시 마차메의 아라비카 커피종자다. 서툰 영어로 선물이란다. 농협창고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낡은 달력 몇 점도 얻었다. 먼 곳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모습이 그녀로서는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커피산지를 오가는 길은 무언가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커피의 제왕이라 하는 카리브해 자마이카 킹스턴의 블루마운틴 마비스뱅크Marvis Bank로 가는 길에서도, 포스트모던 혁명 혹은 마지막 근대 혁명의 근원지라 불리는 멕시코 치아파스 Chiapas의 첩첩산중 산크리스토발 San Christoval 로 가는 길에서도 품은 적이 있는 느낌이다. 커피가 지니고 있는 기운일까. 햇살이 닿지 않는 곳까지 두텁게 깔려있는 초록의 싱그러움, 길을 주위로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이름 모를 열대 나무들. 모두가 기름진 토양과 넉넉한 물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햇살을 머금어 더욱 찬란한 커피 잎의 윤기와 향기는 세계의 커피산지 어느 곳을 가도 같다는 느낌이다.

탄자니아 커피위원회

모시 타운에 있는 카하와하우스. 이곳에 탄자니아 커피위원회가 있다.

모시 타운에 들어서, 탄자니아 커피위원회를 찾았다. 수소문 끝에 번화한 도심 로터리 한복판에 있는 카하와 하우스Kahawa House를 찾았다. 탄자니아 커피위원회는 탄자니아 커피 산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으로, 커피재배에서부터 수확 후 가공까지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정부기구다. 생두의 품질을 평가하여 등급을 메기는 것은 물론 마케팅, 수출에 이르기까지 정책을 수립하는 등 이들이 커피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1층의 국영은행 때문인지 유난히 경계가 심했던 경비 초소에 커피위원회의 담당자 인터뷰를 요청하자 ‘내일 다시 오라’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탐험대의 방문 목적이며, 탄자니아의 커피를 한국에 알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일이라고 말해도 끄떡 않던 그들은 2006년 11월 아프리카 포럼에 탄자니아 대통령의 의전담당으로 방한한 외교관 디리아(Ms. Samira A. Diria)를 만났다며 그녀의 명함을 내밀자 태도를 바꾸었다. 분주히 전화를 해대고 3,4층을 오르내린다.

4층의 리쿼링 룸Liquoring Room으로 안내 받았다. 30분 뒤인 오후 4시면 업무가 끝난다고 한다. 부서 책임자 엘리아(Elia A. Mikwaw)가 낮은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컵핑을 지시하자, 숙련된 솜씨로 컵핑이 준비된다. 탄자니아 커피의 특징을 소개해 달라 청한다. 익숙하다는 듯 비옥한 토양, 지나치지 않는 일조량, 풍부한 강수량, 연중 내내 커피재배에 적합한 기온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커피산업 전반에 걸친 탄자니아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이 말한다. 소규모 농가 재배가 주를 이루는 모시, 아루샤 지역의 기술개발을 위해 농가를 방문 지도, 감독을 하는 일이며, 정부산하 연구기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고품질 다수확을 향한 커피 품종개량 연구와 지속 가능한 영농을 위한 환경보전 운동에 대한 것들이다. 킬리만자로가 탄자니아에 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의 커피라는 말로 끝맺음을 한다. 이미 두 지역을 둘러보았고 또 그 동안 다녀왔던 세계 각지의 커피농장을 떠올리면서 그의 소리가 다소 공허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그의 자부심만큼은 실로 높이 살만하다.

블라인드 컵핑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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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위원회의 로스터.

로스팅 작업중인 직원은 낯선 사람 앞이라서인지 사뭇 진지하다.

한편에서는 테스팅 로스터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레이딩과 컵핑이 준비되고 있다. 나지막이 등급 매기기에 대해 설명한다. 크게 마일드 아라비카와 하드 아라비카로 구별한 후 다시 AA, A, AF, B, C, E, F, PB, TEX, TT로 나눈다. 또다시 각각의 분류에서 깊이 들어가면 Fine, Good, Fair/Good, FAQ+, FAQ, FAQ−, Poor Fair, Poor, Very Poor로 나누고 있다. 촬영을 위해 각 등급에 맞추어 생두를 가지런히 앞에 두고 보여준다.

커피위원회에는 커피 원두를 크기별로 거르는 체가 있었다. 한국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탄자니아 마일드 아라비카 원두는 품질과 크기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눈다.

낮 익은 로스팅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그리 강하지 않게 로스팅이 끝난 원두를 디지털 저울로 정확히 무게를 잰다. 새하얀 컵핑용 자기컵에 담은 후 매우 조밀하게 그라인딩 한다. 팔팔 끓여 한소끔 식힌 물을 천천히 컵에 붓는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 향을 맡은 후 곧바로 기록한다. 다시 컵에 가득 물을 부은 후 가루가 완전히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테이스팅용 스푼 두 개를 이용해 떠오른 거품을 걷어내고는 서너 차례 맛을 본다.

컵핑 진행 모습

컵핑을 진행하던 엘리아는 내게 컵핑을 권했다. 두 잔 커피를 두고 각각의 특성과 우열을 가려보라는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국제적인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탄자니아 커피는 오래 전부터 써오고 있지만, 탄자니아에 커피 산지가 한두 군데이던가? 모든 감각기관을 다 동원하려 애쓴다. 목안 깊숙한 곳까지 혀를 굴린다. 세 차례 컵핑을 하며 각각의 맛의 특징과 우열을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AA와 B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평가다. 체면유지는 한 셈이었으나, 사실 그 등급 차이가 너무나도 분명해 커피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테스트이기도 했다.

이미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좋지 않은 전력사정에 정전이 일쑤인 이곳 탄자니아에서 퇴근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다. 싱글벙글하는 담당자는 탄자니아에서 세계 각국으로 보내진 수년 동안의 커피 수출량과 가격이 정확히 표기된 도표와 통계자료를 건넸다. 탄자니아 커피위원회가 매년 ICO(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에 보고하는 것으로, 생전 처음 접하는 자료이다. 양국 간의 교환학생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끝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비구름 속에 숨어 능선만을 겨우 보여주는 킬리만자로가 못내 아쉽지만 이제 탄자니아를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