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커피의 탄생지, 짐마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커피의 탄생지, 짐마 목동 칼디가 커피를 처음 찾아낸 곳, 짐마로 향하는 길 목동 칼디가 커피를 처음 찾아낸 곳, 짐마로 향하는 길

커피의 탄생지, 짐마로 향하는 길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지 훌쩍 열흘이 지났다. 이미 행색은 현지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비행기로 가면 한 시간 남짓이면 갈 곳을, 800년경서부터 나귀 등에 업혀 홍해로 향했을 커피의 발자취를 따라 고물지프로 흙 길을 달린다. 커피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새벽부터 서둘러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해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중간지점인 기베강Gibe River에 도착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태양만이 무자비하게 이글거린다. 숲은 물론 나무 한 그루도 귀한 형상이다. 국토 전체가 고산지대에다 사철 좋은 기후를 감안한다면 잡초라도 무성할법한데 민둥산은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날수록 더 눈에 띈다.

비좁고 남루한 지프는 요란하게 덜컹거린다. 창문을 온통 열고 달리지만 대지로부터 뿜어 올라오는 열기는 숨을 턱턱 가로 막는다. 운전수 덕택에 무슬림 찬송가인 듯 한 알아듣지 못할 음악을 내내 듣고 있다. 그의 요란한 경적은 시가지를 벗어났음에도 잠시도 쉬지 않는다. 도착 전에 분명히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고 말 것이라는 우스꽝스런 생각이 든다. 노새와 말, 염소, 사람 그리고 인력거와 자전거, 우마차, 온통 먼지와 함께 뒤범벅이다.

짐마 가는 길에 지나는 기베 협곡. 풀 한포기가 드문 민둥산이 대부분이다.

앞자리에 세 명이 끼어 앉아 책을 읽거나 할 형편이 못 된다. 한국을 떠나기 전 가졌던 에티오피아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애써 떠올려본다. 시바여왕으로부터 시작된 고대왕국의 찬란한 영화를 이어받은, 단 한 번도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본 적이 없는, 서력보다 7년 늦어 올해가 뉴밀레니엄이고 아프리카 유일의 고유문자가 있는 원시림과 야생동물의 천국 에티오피아. 그럼에도 에티오피아하면 떠오르는 굶주림에 뼈만 남은 올챙이배를 가진 보석같이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진 소년의 얼굴이며 이웃 소말리아 접경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무력충돌과 이를 피해 모여드는 난민들……. 도저히 같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들이 한데 뒤섞여 형형색색의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베협곡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풍광이 확연히 달라진다. 해발 2,000m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군데군데 커피가 자라고 있다. 누가 아라비카 커피가 해발 1,800m 이상 자라지 않는다 했던가? 바나나 잎이 보이면 어김없이 그 아래로는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지나치는 농부들을 향해 ‘살람selam’을 외친다.

이미 해는 서쪽 편으로 저물고 있다. 험한 산길을 넘고 넘는 어느 순간 갑자기 환하게 펼쳐질 야생커피 가득한 커피의 고향 짐마Jimma의 절경이 마구 가슴을 뛰게 한다. 오래 전부터 그토록 꿈꾸어오던 커피의 고향 짐마로 가는 길이 아니던가? 관람객이 박물관에 들어오면 제일 처음 듣는 말이 “커피의 고향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짐마입니다”다. 매일 수 차례 귀가 따갑도록 말하고 듣는 곳이 바로 이곳 짐마다. 이런 내게 짐마는 거친 돌멩이 하나, 흙먼지 한 줌, 매캐한 매연마저 신선하다. 정겹다. 급한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은 점점 험해진다. 급경사의 흙 길에 움푹 파인 물웅덩이, 가끔씩 미친 듯이 달려드는 반대편 트럭들……. 짐마에 도착한 것은 결국 해가 다 지고 나서다.

소년 칼디의 흔적을 찾아

운무에 싸인 짐마산의 광경은 몸이 아픈 가운데서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새벽 6시가 채 안된 시간인데도 밖이 소란스럽다. 한밤중에 들어간 숙소여서 몰랐지만 아침에 보니 버스터미널 앞이다. 어김없이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많은 비가 내려 땅은 촉촉하다. 흙 길인 탓에 물웅덩이가 곳곳에 널려있다. 간밤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왼쪽 눈을 뜨기가 힘들다. 자동차 매연과 심한 흙바람에 눈에 상처가 났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덜컥 겁이 난다. 짐마에서 온전한 병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원들 몸조심하라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던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어제 그 고생을 하고 이곳까지 와서 다시 아디스로 돌아갈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출국 전 국립의료원에서 난생처음 4대의 예방주사를 두 팔에 한꺼번에 맞고 대원들을 향해 이제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며 으쓱해 하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선택의 여지없이 7시에 숙소를 나선다. 그리도 그리던 짐마 마운틴의 장관을 코앞에 두고 노구가 되어버린 나를 그저 지프에 싣는다. 차창을 타고 들어오는 상큼한 풀 내음에도 가슴이 아프다. 고마운 이들과 정겨운 이들의 모습들이 지난 세월만큼 가슴속에 숨어 있다가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지 못하니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평화로운 소리를 담는다. 새, 염소, 양, 소의 움직이는 소리, 닭 소리, 풀섶의 노랫가락…….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대원들의 감탄사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짐마마운틴 산허리를 짙은 운무가 휘두르고 있다. 겹겹의 산은 스스로 감추어둔 신비로움을 서서히 드러낸다. 가히 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 아래로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프로도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건너편 야트막한 동산 아래로 높이 솟은 첨탑 두 개가 솟아있는 푸른 모스크가 어슴푸레 모습을 보인다. 금방이라도 소년 칼디가 나타나 환호하며 한걸음에 수도승Monk에게 달려가 커피열매의 발견을 알릴 듯하다. 감격이 밀려든다. 처음 온 곳이지만 전혀 낮 설지 않은, 언제 어디선가 꼭 와 본 듯한 그런 느낌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통스러웠던 새벽녘의 몸 상태는 어느새 말끔해져 있다.

짐마산 근처의 모스크. 커피 열매를 처음 발견한 칼디는 이곳으로 달려와 수도승에게 이를 알렸다.

모스크의 문지기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소박한 시골 모스크는 대도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어디에도 화려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색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마치 지도 속 보물섬을 찾는 듯 이곳 저곳을 살핀다. 뒤뜰의 나뭇가지에는 잎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염소와 양들은 이미 나뭇잎을 섭렵하고는 바닥의 풀들만 뜯고 있다.

목동 칼디가 예닐곱 살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놀이기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이곳에서 형제들은 저마다 바쁘게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덩치가 큰 소를 돌보는 일은 마땅히 열 서넛쯤은 되어야 할 형들의 몫인데 반해, 온순하고 겁 많은 염소와 양은 소년 칼디의 몫이자 하루 종일 같이 놀아줄 친한 친구다. 집 가까운 곳의 풀과 나뭇잎은 이미 빈약해질 데로 빈약해져 일찌감치 아침을 인제라Injera와 염소, 양 젖으로 때운 소년 칼디는 녀석들을 데리고 뒷산 먼 언덕길을 오른다. 작은 작대기 하나면 충분하다. 이름 모를 열매며 잎을 따먹으며 점심과 간식을 대신한다. 드러누워 하늘과 대화를 한다. 해질녘까지가 노는 시간이다. 갑자기 녀석들 중 몇몇이 뛰어 날뛴다. 무슨 일인가 달려가 보니 평소 보지 못했던 탐스럽게 열려있는 빨간 열매를 따먹고 있다. 칼디도 다가가 주저 없이 맛을 본다. 상큼한 단 맛이 난다. 숨이 가빠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년 칼디는 녀석들을 데리고 마을의 중심인 모스크로 달려간다.

나는 그 모스크에 지금 발을 딛고 서있다. 감격에 겨워 돌기둥을 만지고 또 만진다. 혹시나 그 옛날의 표식이라도 있을까 하며 구석구석을 더듬지만 1,200년 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내 마음 속에만 있을 뿐……

그 옛날 소년 칼디의 모습을 짐마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염소와 양과 더불어 삶을 꾸리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 그 자체였다.

야생의 숨결을 품은 커피, 예보마을

차를 돌려 짐마의 야생 커피가 밀집한 예보마을Yebo로 향한다. 야생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잡초의 씨앗을 저절로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 올리어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아닌가. 짐마가 야생은 물론 커피 재배산지로 자리 잡은 것은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옛 지명 카파Kaffa에서 커피의 이름이 유래된 짐마는 해발 1,300m에서 2,100m 사이의 고산지대로 연중 상해피해가 없는 최저기온에 30도를 넘지 않아 늘 쾌적하다. 연중 강수량은 1,600mm로 커피뿐 아니라 곡류도 잘 자라 ‘에덴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이라 해야 길을 따라 겨우 몇 채가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언덕너머 좌우로 야생 커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성한 열대 원시림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고 그 사이사이로 햇빛을 향해 어지럽게 줄지어 있다. 겨우 손톱만한 크기의 꽃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어릴 적 보았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누이의 순백색 드레스가 떠오른다. 어느 노작가의 “추수를 앞둔 논의 빛깔이 우리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아닐까”라는 말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때 묻지 않은 태곳적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는 생각이 달라진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 야생커피 환경에 대해 살펴본다. 아프리카는 물론 여러 곳에서 보아왔던 노지재배 커피와 야생커피는 외부 환경에서부터 큰 차이를 띠고 있다. 기온과 일교차, 토양수분, 풍량과 광조건 등은 광합성 및 호흡작용에 직접영향을 끼쳐 커피나무의 생장과 발육을 크게 좌우한다.

이 중에서도 광조건은 특이할 만하다. 야생커피는 주위에 빼곡한 원시림과의 자연적 공조로 지나친 일조량을 피하고 있다. 최근의 인위적인 셰이드 그론Shade Grown경향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잎은 음엽화陰葉化되어 두께는 얇아지고 면적은 커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잎은 엽록체의 그라나 라멜라grana lamella 구조의 발달로 산란광을 포착하기 쉬운 상태로 변해, 집광시스템을 발달시킴으로 약한 광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구조로 변화되어있으리라. 광합성은 어떤가? 일반노지에서는 엽온이 기온보다 훨씬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커피나무의 최적 광합성온도가 대략 20-30도 범위인 것을 놓고 볼 때, 대기 중 온도가 30도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 이상의 고온에 의해 외관상 광합성이 억제되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이곳 짐마의 야생커피 단지에서는 엽온과 대기 중 온도에 큰 차이가 없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한 줌 흙을 쥐어본다. 나뭇잎으로 덮인 흙은 얼른 보기에 건조해 보였으나 어느 조제상토보다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토양 분석을 해 볼 방법은 없다. 다만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광물질, 유기물, 공기, 물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무게와 질감으로 본 토양수분과 공기의 조화는 매우 이상적이다. 발아, 신장, 화기의 발달과 과실 비대를 위해서는 과습되지 않는 정도에서 충분한 토양수분 공급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기에 연강 강수량 1,600mm와 이를 충분히 머금고 있는 짐마의 흙이 더욱 윤기가 나 보인다.

짐마의 야생 커피 꽃

수확기가 아닌 탓에 열매를 볼 수 없다. 아쉬움이 크다. 세계 커피시장에서 짐마 커피, 특히 야생커피가 그리 높게 평가되고 있지는 않다. 커피나무나 열매의 품질보다는 수확 후 처리과정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커피 가공과정을 계량화, 선진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은 일본의 키 커피Key Coffee의 선례를 보면 알 수 있다. 1972년 일본 키 커피는 세계 2차대전으로 황폐화된 인도네시아 토라자 지역의 커피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이 노력은 20년이 흐른 1991년 빛을 보게 되었다. 후에 짐마 농대 학장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에티오피아도 정부, 학계는 물론 커피업계 모두 산업전반에 걸쳐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제법 시간이 흐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곳 짐마에서 본 야생커피는 에티오피아 커피의 아주 작은 일부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야생커피Forest Coffee(10%), 반 야생커피Semi-Forest Coffee(35%), 농가재배 커피Garden Coffee(35%) 그리고 농장재배커피Plantation Coffee(20%)로 나뉘며 이들 중 95%는 유기농 재배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에티오피아 하라르Harar 커피를 십 수년간 로스팅하면서 마치 에티오피아 커피를 다 알고 있는 듯 했던 짧은 식견에 얼굴이 붉어진다. 아직 낮의 햇살이 비치고 있다. 북한강가 온실에서 탄산가스와 싸우며 새우잠을 자고 있을 나의 커피나무들이 안쓰럽다. 모든 요소가 자연적인 짐마커피와 그 정반대인 북한강가…… 원시림 속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그토록 환하고 유정한 것은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에서 커피나무를 키워보겠노라는 나의 꿈이 허튼 공염불만은 아닐 것이라는 간절한 바램 때문이리라. 커피의 고향 짐마에서 야생커피와 함께하는 시간이 꿈결같이 흐른다. 어김없이 호기심 가득한 동네 아이들이 몰려든다. 대원들 모두 아이들과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