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아프리카에는 커피가 없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분나Bunna’ 혹은 ‘부나Buna’라 한다. 짐마의 야생커피를 찾아 헤매다 돌아오는 길에 한 농부에게 무심코 ‘커피’라 말하자 그는 내게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커피가 아니라 분나”라며 힘주어 말한다. 혹자는 분나가 원두를 뜻하는 ‘빈Bean’에서 유래됐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카파 북부의 지역명 ‘부노Buno’에서 왔다고 하기도 한다.
커피와 더불어 지내오는 지난 20여 년 간 커피의 역사나 유래 등과 관련해 책을 통해서나 인터넷을 통해 엇비슷한 무수히 많은 얘기들이 떠돌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대개는 커피에 대한 애정이나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 일본어를 맹목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는 해석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탐험을 떠나기 전 품었던 이들에 대한 사실규명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린다.
에디오피아 커피의 발전을 꿈꾸는, 짐마 농업대학
짐마대학 농업대학의 아두나 학장은 에티오피아의 농업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늦지 않게 짐마 대학에 도착한다. 캠퍼스는 산 중턱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바깥세상의 혼잡스러움과는 철저히 단절되어있다. 쾌청한 하늘아래 황토길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정성스런 손길이 투박한 모습으로 구석구석에 닿아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나무 전봇대들의 열병, 늘어진 전선, 칠이 벗겨져 붉게 녹슨 함석지붕의 인문대 강의실, 하얗게 페인트로 단장된 벽돌담, 어디를 가던 만날 수 있는 친절한 미소… 에티오피아 최고의 짐마 농대를 둘러보는 일은 원예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법학, 의학 등 10개의 단과대학으로 성장한 짐마대학은 1952년 농대가 최초 설립되었다. 여러 경비실의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야 짐마 농대의 아두나 학장Dean Dhuguma Adugna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람 좋은 인상이다. 그의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눈빛은 나이가 들수록 닮으려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의 한 연구소와 손 잡고 수 년간 수행해오고 있는 고품질 커피생산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준다. 손수 제작한 15분짜리 영상자료를 통해 에티오피아 커피산업 전반에 대한 소개와 당면과제인 커피 프로세싱의 합리화 계획을 잘 알 수 있다.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농민 교육프로그램을 보면서 과거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아프리카에는 ‘커피’가 없다
분나에 대해 질문한다.
“왜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커피라 하지 않고 ‘분나’라 부르지요?”
“네, ‘분나’는 커피를 부르는 현지 언어입니다. 우리는 커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커피의 이름이 ‘카파Kaffa’라는 지역명에서 온 것은 틀림없습니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이지요. 그러나 ‘분나‘는 커피를 칭하는 우리고유의 언어이며, 원어Original Name입니다.”
“분나는 빈bean에서 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만?”
“빈은 커피빈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지만 우리는 볶은 커피, 분쇄한 커피, 끓인 커피 모두를 ‘분나’라 부릅니다. 커피의 오리지널 네임은 ‘분나’입니다. 모든 에티오피아인들은 커피를 분나라 부르지요. 영어로는 커피라고 하지만, 커피가 최초로 발견된 우리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분나라고 합니다.”
중복되는 내용을 거푸 들려준다. 아두나 학장의 대답에는 공감할 수 있는 강한 신념이 깔려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우리의 ‘김치’를 ‘기무치’로, ‘인삼’을 ‘진생’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겹쳐진다. 왜 ‘김치’를 김치라 부르는지, 왜 ‘인삼’이라 부르는지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김치는 왜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김치다. 분나니까 그냥 분나라 부르는데 무슨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커피라 불러도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다. 여전히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계속 분나의 유래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실 에티오피아인 모두가 분나라 부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70여 종족이 200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민족 국가로 대다수 에티오피아인들이 사용하는 암하라어Amharic로는 ‘분나Bunna’이지만, 오로모어Oromia로는 ‘부나Buna‘이며, 티그리어Tigrigna로는 ‘분Bun’, 케피초어Kefficho로는 ‘보노Bono’라 부른다.
커피와 카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이어간다.
“이곳 짐마의 옛 지명이 카파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됐나요?”
“서양에서 말하는 커피는 카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전의 카파는 하나의 왕국(Kingdom of Kaffa)이었습니다. 이 왕국의 수도가 짐마였구요. 1942년, 짧았던 이태리 식민정부 시기에는 카파도道Kaffa Province라는 이름으로 짐마, 기베 등 인근 지역을 편입했습니다. 1995년 정부의 신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카파도道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오로모州Oromia State 12개 행정 구역중 하나인 카파지역Zo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지요. 짐마는 이 지역의 행정중심지로 지금은 짐마시市와 카파지역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곳 모두 커피를 재배하는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커피가 ‘힘’을 뜻하는 아랍어 ‘카베Kaweh’나 ’카하와Qahwah’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는 나의 질문에 그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히 그렇지 않다 답한다. 커피의 고향이 에티오피아의 카파지방이며 물자교역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간 후 이슬람의 전파를 따라 유럽전역으로 펴져나가게 된 것으로, 아랍인들은 에티오피아인들의 분나를 카파에서 왔다하여 카베, 카화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굳이 우리의 동해나 일본해를 들추지 않더라고 역사의 해석에는 상대적인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어, 케피초어로 카파Kaffa의 ‘Ka’는 ‘신God’을, ‘Afa’는 ‘만물이 소생하는 땅’을 의미한다. ‘신이 주신 풍요로운 땅’이라는 의미다. 반면, 야생의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고 자라기는 했으나 경작되기는 예멘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커피의 원류는 예멘이라 주장하는 입장에서 볼 때, 커피는 마시면 힘이 나는 아랍어 ‘카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커피의 발견시기를 유추해본다. 그 시기를 두고 500년경, 600년경, 혹은 1,000년경이라며 제각각 주장을 달리한다. 이슬람교의 발전사를 들여 보면,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 탄생(570년)으로 시작해 이슬람의 세력 확장은 북쪽 이집트를 거치면서 아프리카 각국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700년경 예멘(7세기에 정식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임)으로부터 홍해를 건너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고 곧 동아프리카 전역에 퍼지게 된다. 서부 내륙의 깊숙한 산간지방인 이곳 카파에까지 이슬람의 모스크가 세워진다. 어느 날 커피를 발견한 칼디가 기뻐 한걸음에 이 모스크로 달려간다. 이곳에서는 이슬람 수도사와 교도들이 졸음을 쫒기 위해 한밤중에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발견된 때에 이미 이슬람이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가 600년, 700년을 넘어섰다는 반증이며, 1,000년경에는 이미 아라비아 반도에 재배가 되던 때이니, 이들을 잘 따져보면 800년경이 맞지 않을까?
야생 커피의 태생지 쪼쩨 마을
아두나 학장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했다. 그는 에티오피아 깊은 산골 오지의 학자이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커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 옛 것을 지키며, 부족한 것에 욕심 내지 않고 채워나가려는 그의 숨은 노력이 진주처럼 빛난다. 그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괜히 우쭐해진다. 그와의 커피 얘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진다. 나는 그가 그려내는 순박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연신 고개만 끄덕인다.
헤어질 무렵 불쑥 쪼째Choche 얘길 들려준다.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야생커피나무의 태생지이며, 수없이 많은 야생 커피나무 종들을 볼 수 있는 곳인 동시에 내로라 하는 대형 커피수입상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해진다. 짐마에서 50km 떨어진 곳이다. 해발 1.800m을 넘나드는 산악지대인 이곳 짐마는 해가 일찍 떨어진다. 재회를 약속하고 급하게 작별인사를 나눈다. 돌아오는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쪼쩨가는 길
쪼쩨로 향하는 고물 지프는 산길을 잘도 달린다. 50km를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릴 시간이지만 이곳에서는 형편이 다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황톳길에 울퉁불퉁 솟아오른 구릉과 움푹 파인 웅덩이, 연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고물 지프소리, 족히 두 시간은 넘어 걸리리라. 밤이면 불 빚 하나 없는 산길이기에 돌아오는 길이 걱정스럽다. 길에는 양이며 염소, 당나귀와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있다. 하나도 급한 게 없어 보인다. 숲길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서 너 마리 양떼와 아이들이 보인다. 산길이 머금은 초록은 언제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초록은 영원히 변치 않을 자연색이다. 생명의 색이다. 빌딩 주차장이며 아파트 베란다에까지 이 초록을 옮기려 애쓰는 우리의 오늘을 생각하면 산길에서 한데 뒤엉켜 사는 이들의 행복지수가 우리 보다 훨씬 높으리라. 초록과 황토의 산길은 지쳐가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다. 감바Gamba지역 표지판을 지나친다. 아주 작은 마을을 지나도 아이들은 차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온 동네 골목길을 따라 소독차의 하얀 연기를 뒤쫓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야생 커피가 발견된 자리에 아프리카 왕들이 모여 회합을 가진 장소를 나타내는 표식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쪼쩨 마을을 지난다. 그러고도 한참을 좁은 숲길을 달린다. 인적이 드문 길이다. 표지판이 있을 것이라던 아두나 학장의 말과는 달리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지나친 길을 몇 번씩 다시 오가고 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할아버지를 반갑게 불러 도움을 청한다.
표지판이나 표식도 없는 산길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내린다. 먼 산 너머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내일 다시 간다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숲길로 들어선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다.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신비감이 밀려온다. 주위엔 온통 덤불 숲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길을 잃을 것 같아 대원들에게 소리친다. 산비탈을 올라 숨이 가쁜데도 힘든 줄은 모르겠다. 앞사람의 발걸음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영영 아프리카의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얼마나 달렸을까? 산 중턱에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영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온통 녹슨 도끼 색의 돌무더기가 누워있다. 군데군데 억겁의 세월을 견뎌낸 돌무더기와 그 틈에서 모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이 나그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고여있는 샘물은 거울처럼 맑다. 파르테논 신전 앞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선 듯한 기분이다.
커피나무의 흔적을 찾으려 사방을 둘러보지만. 커피나무는 단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난 표식의 의미를 설명한다. 수 세기 전 야생커피가 발견된 바로 이 자리에서 아프리카의 왕들이 모여 회합을 가진 표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지라는 설명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었을 아두나 학장과 같이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막상 찾아온 커피의 탄생지인데, 기쁨이나 자부심보다는 먼 곳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들었다. 검은 구름이 먼 서쪽 산으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다. 커피나무들과 유적지에 대한 기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떠날 수밖에 없다.
온몸은 비에 젖어있다. 어느 틈에 나타난 아이들 한 무리가 앞장선다. 빗속을 뚫고 아이들은 달린다. “아~데바이오! 아~데바이오!” 축구선수 아베바이오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수 치며 노래하며 발을 맞춰 달린다. 우리도 달린다. 거친 잡초들이 무성하지만 몇몇은 재주를 넘기도 한다. 아프리카 특유의 야호 소리도 들린다. 우리 모두 비에 젖은 배낭을 짊어지고 있지만 가볍게만 느껴진다. 올라올 때와 똑같은 먼 길을 돌아가는데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꿈결처럼 행복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