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커피의 역사] 일본의 커피역사가 우리보다 170년이 앞선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일본의 커피역사가 우리보다 170년이 앞선다? 한국 커피 역사의 기원을 찾아 일본의 커피역사에 대한 연구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다. 제대로 된 자료조차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천양지차이다. <br>커피 역사에 대한 양국간의 이러한 태도 차이는 커피산업과 문화의 질적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1700년경부터 나가사키長崎 테지마出島에서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게 되었고 이 때 커피가 소개되었다.”1)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그리스도교 포교를 금지하는 한편 쇄국정책을 펼쳐 외국과의 교역을 금지시켰으나, 포교활동을 하지 않은 네덜란드, 중국은 예외로 두어 무역을 계속하게 함으로써 후일 일본이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에는 테지마에 출입이 허가되었던 상인이나 무역업 종사자 등 일부에 한정되었던 사람들만이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일반인들이 마시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인 1854년 개항한 에도시대 말기부터 메이지시대明治時代(1868-1912)가 되고 나서의 일이다.

일본 커피역사의 시작

데지마는 나가사키 앞바다에 인공적으로 건설된 부채꼴모양의 섬으로,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곳에 거주하며 일본과 통상을 지속했다. 일본인의 데지마 출입은 관리와 상인 등 허가받은 소수의 인원만 가능했는데 이들에 의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커피가 음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전역에 커피가 전파되고 일상적으로 음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후인 1854년 개항 이후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1854년 페리제독에 의해 하코다테函館와 시모다下田를 개항하면서 일본에는 이 두 개항지를 비롯해 나가사키, 요코하마横浜등지에도 외국인 체류자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상인들이 자연스레 들어오게 되었고 이 때 외국인과 접촉이 많은 일본인들에 의해 커피가 마셔지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국과 동시에 유학생, 시찰단, 구미 여행가들이 외국 여행 중 서양의 식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커피 마시는 습관을 들여오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 일본인이 경영하는 서양요리점들이 문을 열었고 도쿄에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음식과 함께 커피가 제공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개점을 알리는 광고가 여러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인 남대문역 다방에 해당하는 일본의 첫 커피하우스는 언제 생겨났으며 어디에 있었는가?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 가히차칸은 1888년 4월 23일 도쿄에 문을 열었다. 일본 커피업계와 학계는 가히차칸이 있던 자리에 표석을 세우고 자국 커피역사의 기념비적 순간을 기리고 있다.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세웠던 초나가요시

1988년 UCC커피박물관이 펴낸 ‘일본최초의커피점日本最初のコヒ店’에 의하면 일본 커피하우스의 시초는 1888년 4월 23일 도쿄에 문을 연 가히차칸可否茶館이다. 이 책에는 신문보도며 광고스크랩, 작가들의 스케치 등이 소상히 소개되어있다. 1877년 아사쿠사에 있는 커피점에 관한 기사 등 몇 군데에 커피점 광고가 실려 있어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에 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히차칸을 최초의 커피점이라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조사와 연구가 잘 정리되어있다.

1888년 쵸나가요시鄭永慶는 전년 화재로 소실된 도쿄 중심가의 이백여평 땅에 8칸, 5칸짜리 목조로 된 2층 양관을 지었다. 커피 한 잔에 1전 5리,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2전에 팔았고 쿠바로부터 온 담배, 보르도에서 온 술 그리고 빵과 버터가 준비되어있는 본격적인 커피점이었다. 파란 페인트로 칠한 2층 건물의 지하에는 당구대가 있었고 유리창이 달린 현관문을 지나 1층에는 바둑판, 장기판, 신문철 등이 놓여있었다. 트럼프 놀이를 하거나 붓과 벼루가 있어 글을 쓸 수 있는 별도의 방도 있었다. 2층은 커피마시는 공간으로 원형과 사각 테이블이 어우러져 있고 등나무 의자를 두었으며 혼자 앉을 수 있는 좌석도 마련해 두었다. 벽지로 우아하게 장식했고 천장의 램프는 화려함을 더해 미국이나 유럽의 커피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로 지식인층이 손님으로 드나들었으며 그들은 이 커피점을 가히차칸이 아니라 ‘고히차칸コヒ茶館’이라 불렀다. 당시 메밀국수가 8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커피 한 잔 값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쵸나가요시는 나가사키 출신 당나라 통역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한문을 잘 읽고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서양문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미국 뉴욕의 예일대에서 수학하다 심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한때에는 오카야마 대학에서 교육자로, 외무성 관리로 일했다. 직접 체험했던 서구문명 생활을 그리며 그는 “공동으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제공한다.”는 원대한 목표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태의 근대 커피점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일본 최초의 커피점 가히차칸은 불과 5년만인 1892년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게 된다. 이 실패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던 중 지병인 심장병이 도져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히차칸은 비록 단기간에 끝났지만 당시 지식인들의 사교의 장으로 커피를 대중에게 소개한 일본 최초의 커피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의 커피역사 비교

[일본 최초의 커피점日本最初のコヒ店], (1988, UCC커피박물관). 일본의 대표적 커피업체인 UCC는 커피박물관을 운영하는 등 자국의 커피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일본의 커피역사가 1700년경까지 올라가는 반면 우리 커피역사에 대한 기록은 1884년에 그쳐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커피역사가 일본에 비해 170년 이상 늦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그러하다기보다는 기록의 유무에 기인한 것이다. 커피 역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척된 것이 없어 확보한 기록과 자료의 양이 빈약한 우리의 현실과, 풍부한 기록을 바탕으로 커피역사를 꼼꼼히 정리해 놓은 일본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일직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다.

오히려 한국 커피역사에 대한 기록이 속속 발견되면서 양국간 커피역사의 차이는 좁혀지고 있다. 한국 최초의 다방이 1923년 이견二見 후타미가 아닌 1909년 남대문역 다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최초의 커피하우스 출현시점에 대한 양국간의 격차는 불과 20여년으로 줄어들었다. 그 전까지는 언제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해졌는지 알지 못하다가 1884년에 쓰인 커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일본과의 비교나마 가능하게 되었다. 추가로 기록이 발견될 경우 양국 간 커피역사의 차이가 더 좁혀질 여지는 충분하다.

커피보다는 차가 일상에 자리한 일본이지만 커피역사에 대한 그들의 기록은 정확하고 구체적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커피역사에 대한 인식은 허구와 상상으로 가득 차있다. 검색사이트에서 ‘한국 커피 역사’로 검색을 하면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처음 마시면서 한국 커피역사가 시작했다는 글이 무수하게 노출된다. 정관헌과 한국 최초의 다방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오류는 심지어 영화나 소설로도 각색되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몇 십 년 된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인 일본, 오래된 다방이 사라진 한국

문을 연지 45년이 넘은 일본의 커피하우스 르노아르는 현재에도 젊은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당당한 ‘현역’이다. 자국 커피역사와 문화를 냉대하지 않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경쟁력을 길러온 것이 비결. 50년을 넘은 다방이 무관심 속에 속속 사라져 이제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우리의 현실과 대비된다.

잘못된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학계와 커피업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커피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저술이 1차 기록에 대한 확인 없이 오직 인용에 인용을 거듭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 하면 명백히 잘못된 사실을 정답으로 제시하는 문항이 바리스타 시험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바리스타 시험문제의 경우 그나마도 4-5년에 한 번 씩 60문항 중에 한 문제 정도 출제되는 것이 전부이다.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부족한 관심과 열악한 환경 탓에 우리 커피역사 연구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커피역사와 문화를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커피업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리스타 시험에 우리 커피역사에 관한 문제가 4-5년에 한 번, 한 두 문항 출제 되는 게 전부인 현실은 이를 반증한다. 그나마도 잘못된 커피역사를 정답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적인 커피 소비국이자 수출국, 몇 십년된 커피하우스가 여전히 인기를 끌며 성업 중인 일본 커피 문화의 기저에는 자국 커피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조사가 바탕이 되어 있다. 우리 커피역사 연구의 열악한 상황 위로, 오래된 다방이 자취를 감추고 130년을 이어온 커피 문화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현실이 오버랩되는 이유이다.

참고도서
  • [日本最初のコヒ店] (1988, UCC커피박물관)
  • 박도, [일제강점기] (2010, 눈빛아카이브)
  • 나가쓰라 아키라, [일본인이 본 역사속의 한국] (소화)
  • 진실과미래, 국치100년 사업공동추진위원회, [100년전의 한국사] (2010, 휴머니스트)
  • [All about Coffee] (1995, U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