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비운의 군주 고종과 달콤하고도 쓰디쓴 커피의 만남은 수많은 이들에게 드라마틱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br>그 결과 한국 커피사는 고증에 의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근거 없는 허구의 향연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정관헌 앞에 서있는 안내 표지판. 정관헌을 고종이 차를 즐기고 음악을 즐기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종은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 “정관헌은 고종의 커피숍이었다.” 한국 커피사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지는 말들이다. 이 모든 말의 중심에는 고종이 있다. 커피를 사랑한 군주로 유명한 고종, 그와 커피 사이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있을까.

아관파천과 커피

러시아 공사관은 1890년 정동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에 지어졌다.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한 후 이곳에서 1년여간 머물렀다. 공사관 건물은 6.25 전쟁 때 불타고 현재에는 복원된 탑만이 남아있다.

“양력 2월 11일 오전 일곱시 삼십분, 동쪽 담에 있는 쪽문 앞에 가마 두 대가 나타났다. 당시 공사관에 머물고 있던 이범진은 이른 아침에 왕이 궁을 떠나 우리 공관으로 오기로 하였다는 것을 미리 알고 우리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쪽문은 곧바로 열렸고 공관 안으로 가마들이 들어왔다. 가마 한 대에는 궁녀 한 명과 왕이 타고 있었고, 다른 가마에는 궁녀와 세자가 타고 있었다. 물샐 틈 없는 감시를 받아왔던 왕은 궁녀들과 장교 이기동의 도움을 받아 궁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듯하였다.” V.P 카르네프 외, [내가 본 조선, 조선인] (가야넷, 2003) p.99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안전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건청궁(경복궁)을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탈출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왕비의 빈전에는 궁녀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침 일찍 가마를 타고 궁궐의 안뜰까지 간 다음 다른 궁녀들과 교대하곤 하였다. 이 나라의 관습에 따라 여자들의 가마는 건드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왕은 새벽까지 일하고 매우 늦게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어서 보통 정오에 일어났다. 왕의 이런 습관을 잘 알고 있어서 이른 아침에는 그 누구도 왕을 감시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왕은 궁녀의 가마를 타고 궁을 빠져 나왔다. 가마꾼들조차도 공사관에 도착해서야 왕이 가마에 타고 있었음을 알았을 정도로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른바 아관파천 계획이 성공하였던 것이다.” V.P 카르네프 외, [내가 본 조선, 조선인] (가야넷, 2003) p.99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동안 고종은 새로운 환경에 매우 빠르게 적응하였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폐하는 유럽인 거류지European Settlement로 부르는 정동에 머물게 된 이래로 매우 민주적인democratic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백성들을 만나고, 그들과 사적인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매일 공사관 뜰 안을 산책하면서 이곳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달 16일에는 폐하와 왕태자 전하는 4분의 1 마일쯤 떨어진 명례궁明禮宮(경운궁)으로 도보로 납시어walked 일본제국의 전권공사 코무라의 신임장를 제정 받고 나서 다시 공사관으로 되돌아왔다.” V.P 카르네프 외, [내가 본 조선 조선인] (가야넷, 2003) p.99

당시 고종은 거의 궁궐에 감금된 상태에서 일본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자신과 세자의 안전이 위협 받는 상태였기에 러시아 공사관에 기거하는 동안 모든 음식물을 외부에서 조달했는데 이들은 미스 손탁이 제공했다. 이러한 정황은 후에 고종이 아관파천 때 미스 손탁에 의해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고종이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아관파천 이전에 이미 궁중에서 커피가 음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담은 문헌 기록이 존재한다.

1884년부터 3년간 어의로 지낸 알렌은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궁중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는 동안 궁중의 시종들은 거절하는 데도 불구하고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과 과자를 끝까지 후하게 권했다.(중략) 후에 그들은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품목에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 H. N. Allen, [Things Korean], (1908) p. 195

이처럼 1880년대 중반에 이미 궁중에서는 커피가 음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고종이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아관파천 이전부터 고종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손탁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새삼 커피를 처음 소개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정관헌은 고종의 커피숍?

정관헌은 건축 년도가 정확하지 않으나 1900년에 러시아 건축가 세레딘 사바틴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때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신성한 공간이지만 현재에는 고종의 커피숍이라 불리며 커피업체의 상업적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관헌은 솔밭과 어우러진 함녕전 등의 고건축물을 고요하게(靜) 내다보는(觀) 곳’ 이라는 뜻이다. 덕수궁 관리사무소는 정관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서양 절충식 건물은 고종황제께서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시던 곳이며 한때 이곳에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후략)’

위의 설명처럼 정관헌은 과연 고종이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이었을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정관헌은 고종의 커피숍이었을까? 그러나 정작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그 어떤 문헌에도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관헌을 고종의 커피숍이라고 명명해놓은 수많은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출처를 명기해 놓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이 정관헌 연구에 참여한 한 대학의 건축역사 연구실에 질의한 결과 오히려 “건축학적 측면으로 볼 때 정관헌은 연유를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유를 즐겼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확인된 기록으로 보면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유를 즐긴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례를 지낸 신성한 곳이었다.

1901년 고종은 태조의 어진을 정관헌에 모셔 친히 참배하고 잔을 올리는 극히 드문 제례인 작헌례酌獻禮를 올렸다. 이후 정관헌에서는 수시로 참배와 제사가 이어졌으나 일제에 의한 강제 퇴위 이후 1912년에는 황제가 정관헌에 직접 나와 태조, 고종어진, 순종예진 등을 중화전으로 옮기게 되었다. 1930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오카다 미츠구의 사진에 의하면 정관헌은 현재의 개방형 기둥구조가 아니라 사방이 벽돌벽으로 둘러싸인 구조였다. 지금과 같이 세 방향이 열린 구조에서는 어진을 모셔두고 예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고종과 커피에 관한 세간의 말들에는 매혹적이지만 근거 없는 추측으로 가득 차 있다. 외세의 각축과 국내 정치의 혼란으로 바람 잘 날 없던 조선의 군주 고종, 그리고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서구로부터 온 커피. 이들이 만나 불러일으키는 드라마틱한 추측들이 지금의 근거 없는 말들을 낳고 나아가 한국 커피사를 허구의 기록으로 채워 넣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가볍게 폄하되고 한 나라의 궁궐이 상술의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작금의 세태를 우리는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참고도서
  • 김원모, [근대 한미 교섭사] (홍익사, 1979)
  • 김원모, [알렌의 일기]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1)
  • 고준환, [하나되는 한국사] (범우사, 1992)
  • V. P 카르네프 외 4인, [내가 본 조선, 조선인] (가야넷, 2003)
  • [조선 근대와 만나다] (서울시립대 박물관, 2006)
  • 박경룡, [정동, 역사의 뒤안길] (상원사, 2008)
  • 이순우,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하늘재, 2010)
  • M. A 알렉산드로비치 포지오, 이재훈옮김, [러시아 외교관이 바라본 근대한국] (동북아역사재단, 2010)
  • H. N. Allen, [Things Korean] (1908)
  • R. von Moellendorf, [P. G von Moellendorff: Ein Lebensbild] (1930)
  • G. W. Gilmore, [Korea from its Capital] (1892)
  • 이상각, [꼬레아 러시] (효형출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