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커피의 역사] 조선, 커피를 탐하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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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애호가로 유명한 고종황제이지만 그에 얽힌 많은 설들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이라거나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설은 잘못된 것이다.

고종황제가 사용한 은제 커피스푼. 고종의 증손자인 혜원 선생이 왈츠와닥터만 커피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895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대접받았다.”

방송이며 잡지는 물론 다른 분야 교양서 등에서도 차용해 쓰는 바람에 이미 정설로 굳어져버린 이 말은 과연 어디서 나온 기록일까? 지금도 커피를 공부하는 수많은 바리스타 지망생들이 여과 없이 믿고 있는 이 말들은 과연 사실일까? 우리나라 커피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최초의 커피기록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월(Percival Lowell, 1855.3.13-1916.11.12)은 그의 저서 『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 조선에서의 커피 음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 관련 기록을 남긴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 Lowell(1855~1916)이다. 동양문화에 관심을 두고 일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해 12월에는 노고를 치하하는 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게 됐다. 조선의 정치와 풍속,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자세히 기록했던 그는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책을 펴내 조선을 서구에 알렸다.

그는 1884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가게 되었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 We mounted again to the House of the Sleeping Waves to sip that latest nouveautē in Korea, after-dinner coffee.”라는 기록을 남겼다. 고종황제의 아관파천보다 12년 앞선 일이다.

그는 커피가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따르면 1884년은 물론, 그 이전에도 조선에 커피가 유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은 세계에 감춰진 나라였다. 세계가 우리를 알 수 없었던 것만큼 우리도 세계를 몰랐으나 조선은 이미 서양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근대의 세계로 서서히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서구문물에 일찍 눈을 뜬 고관대작들이나 세도가들, 외국을 빈번히 드나드는 조선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널리 마셔지고 있었다.

감춰진 나라 조선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은 동방의 숨겨진 나라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이는 개항 이전부터 이미 서양인들과 조선 사이에 다양한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1800년대 후반 세계는 장원의 몰락과 계몽사상의 번성에 이은 산업혁명의 성공에 힘입어 근대화로 들어선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상태였고, 각국의 제국주의는 전 세계로 세력을 키워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등지까지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커피는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네덜란드는 1700년경에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아라비카 커피나무를 자바섬에 심어 대규모 커피농장을 세웠고, 1880년에는 콩고에서 병충해에 강한 로버스타 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영국은 커피하우스가 정치토론의 장소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커피 금지령 법안을 공포하였을 만큼 커피하우스가 번성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계몽잡지 일 카페Il Cafe(1766-1864)가 발간되었으며 1901년에는 이미 최초의 에스프레소머신 베체라Bezzera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프랑스의 경우 1686년 카페 프로코프Cafe Procope가 문을 연 이래 루소, 볼테르 등 지식인들이 정치토론과 지식활동을 펼치던 시기를 거쳐 1800년 중반에는 파리의 카페가 시내 곳곳에 넘쳐나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이었다.

유럽에서 커피문화가 만연하고 커피가 제국주의의 진출 경로를 따라 세계 곳곳에 퍼져나간 지 오래인 1876년, 조선은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비로소 바깥세상에 문을 열게 된다. 1882년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 차례로 수교를 맺게 되어 세계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조선에 들어왔다. 그들은 선교사를 비롯해 단순한 여행객에서부터 외교관,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이들과의 활발한 교류는 적지 않은 기록물을 남기게 되었다.

1858년 4월 24일자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서도 서양인들의 조선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1858년, 부산포에 정박한 영국인들은 「The Illustrated London News」1858년 4월 24일자에 조선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주민들은 흘러내리는 듯한 겉옷과 이상하고 높게 솟은 검은색 모자를 썼다. (중략) 옷은 거의 흰색으로 모시 혹은 면직물이다. 조끼는 여미지 않고 걸쳐 입었다. 허리에는 허리띠를 차고 바지는 발목 부위에서 묶고 발은 면 스타킹으로 감싸고 신기한 짚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다.” -Sketches in Japan and Corea.

독일인 사업가 오페르트E. Oppert(1832-1903)는 세 번에 걸친 조선여행을 통해 알게 된 역사, 문화, 지리와 풍습을 정리하여 여행기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를 1880년에 출판했다. 이 기록들이 커피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1858년부터 서양인들이 조선에 대해 다양한 기록물을 남긴 것으로 보아 1896년보다 적어도 30년 전에 이미 서양인과 조선의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출판물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100권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어지는 커피기록들

퍼시벌 로웰 외에도 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에서의 커피 음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알렌의 저서에도 커피에 관한 기록이 있다.

1884년 이후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관한 기록은 이어지는데, 1884년부터 3년간 의료선교사로 일했던 알렌H. N. Allen은 그의 일기에 “어의御醫로서 궁중에 드나들 때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글을 남겼다.

영국영사를 지낸 칼스W. A Carles는 1885년 11월에 조선에 들어와 당시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P. Möellendorff의 집에 머물며 “우리는 이제 좋은 곳에서 씻을 수 있고 커피를 마시게 되는 사치스러움에 감사하게 되었다.”라는 글을 남겼다.

칼스와 같은 해에 조선에 들어와 1889년 관북 지방으로 신혼여행 길에 오른 언더우드 부인Mrs. Underwood은 “현감과 지역민들에게 대접한 저녁에서…….색다른 커피를 소개했다. 우리는 설탕이 떨어졌다고 속삭이지 않고 커피에 벌꿀로 향기를 돋우었던 것이다.”라 전하고 있다.

미세스 언더우드도 그녀의 저서 「Fifteen Years among the Top Knots(1904)」에 조선에서의 커피 음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물밀듯 밀려드는 외세 앞에서 숙명적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고종황제의 커피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도 없이 황제를 일컬어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이라느니, ‘러시아 공사관에서 최초로 마셨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더 이상 정설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되겠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커피역사는 병인양요 이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 1860년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기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는 더 이상 서양에서 온 남의 것이 아니라 이미 130년 우리 역사의 흐름과 같이 하는 우리의 귀한 문화 산물이기에 지금부터라도 꼼꼼히 정리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 <서유견문> 2004, 유길준, 서해문집
  • <조선 근대와 만나다> 2006, 서울시립대 박물관
  • <푸른 눈에 비친 백의민족> 2008, 한국기독교 박물관
  • <All About Cofee> 1995, UCC
  •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 1880, E. Oppert
  • <Caffe> 2007, Gabriella Baiguera
  • <Life in Corea> 1882, W. A. Carles
  • <Things Korean> 1908, H. N, Allen
  • <Chosu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886, P. Lowell
  • <Life in Corea> 1882, W. A. Carles
  • <Things Korean> 1908, H. N, Al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