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길이 끝나면 여행은 시작된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길이 끝나면 여행은 시작된다

이번 탐험의 종착지 이스탄불.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커피 문화의 발상지

밤새 사나를 거쳐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Sultan Ahmet 공원에 와 있다. 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꼭대기 층 카페에서 터키식 커피를 곁들인 아침식사를 한다. 여기서 내려 보는 바다는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오가는 여객선과 하늘을 나는 비둘기, 바다를 두르고 있는 세월의 흔적들. 몇 년 전 들렀던 이 카페는 의자만 조금 늘었을 뿐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때 같이 왔던 친구가 그립다. 울컥 외로움이 밀려와서는 뜻 모를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만든다. 지나온 여정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는다.

2003년 여름, 이스탄불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에티오피아, 예멘에서 자라 메카, 메디나에서 번성한 커피는 이슬람의 물결을 타고 이집트, 시리아를 거쳐 동서양문명의 중심 터키 콘스탄티노플로 와서 비로소 문화로서의 꽃을 피우게 된다. 1554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최초의 커피점이 생겼다는 기록을 찾아 책과 지도를 번갈아 펼쳐가며 길을 나섰다. 450년 전 그 최초의 커피점이야 없어졌겠지만 그 터만이라도 찾아 그 때를 그려보며 역사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껴봐야지. 오직 그 마음으로 이스탄불 구석구석을 정신 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도 관광객으로만 대할 뿐 역사 속의 커피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길이 끝나면 여행은 시작된다 이미지 1

아직 쌀쌀하지만 길거리로 전통 터키식 커피점을 찾아 나선다.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 길거리에도 현대식 커피점은 넘쳐난다. 길거리 자체가 박물관인 터키에는 한 해 3천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정작 터키식 커피를 맛보고 돌아가는 여행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늘날 터키인들은 커피를 부를 때 터키쉬 커피와 네스카페Nescafe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그만큼 이곳에서도 인스턴트 커피가 대중적이고, 차이Chai가 생활화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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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카흐베하네에 매료되었던 외국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커피를 전파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을 찾는 관광객 중에 과연 몇이나 터키식 커피를 맛보고 돌아갈까?

노천 카페에서 우리는 터키식 커피를 한 잔씩 맛보았다.

터키식 커피를 다 마신 후 점을 쳐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포춘 텔링Fortune Telling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커피가 이슬람의 음료이던 시절, 종교 의식에 커피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잊혀진 지 오래다. 예전 우리가 다방에 앉아 성냥개비로 운세를 이야기하던 것처럼 아주 사소한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터키에서도 커피는 역사나 전통문화가 아니라, 세속적인 산업이자 돈이 되어 버렸다.

길거리 인도 변, 겨우 엉덩이를 반 정도를 걸칠 만한 낮은 의자와 짙은 양탄자 조각이 깔린 테이블이 전부인 노천 카페를 찾는다. 맞은 편에는 선글라스로 머리카락을 넘긴 중년 신사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작은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커피를 마신다. 홀짝 하면 다 없어질 양의 커피를 아껴가며 여러 번에 나눠 마신다. 대원들도 진하디 진한 터키식 전통 커피 한 잔씩을 주문한다. 한 잔 가득 풍부한 향이 감도는 커피를 음미한다.

터키식 전통 커피를 맛보다

보스포로스 해협으로 가는 유람섬

언덕바지 내리막길을 따라 골든혼Golden Horn으로 향한다. 고색창연한 돌담 벽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스포로스(Bosphorus) 해협으로 가는 유람선들이 즐비한 에미노뉴(Eminönü)와 갈라타(Galata) 다리를 지난다. 반짝이는 수면으로 비쳐지는 도시의 모습을 통해 콘스탄티노플의 옛 영화가 떠오른다. 부둣가는 관광객과 주민들이 한데 뒤섞여 시끌벅적하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가 함께 뒤섞여 빚어내는 이스탄불은 역시 원경이 일품이다. 고개를 돌려 언덕 위를 바라본다. 이전보다 부쩍 깨끗해진 차량들과 잘 닦여진 도로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이스탄불이 왠지 안타깝다.

골든혼 공원에서

해변을 따라 이름 모를 궁전과 별장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따금 호젓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번잡하기로는 이스탄불만 한 곳도 없으련만, 이렇듯 한적하고 평온한 공간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다니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듯하다. 골든혼 오솔길을 걷는다. 나무그늘과 작은 분수대가 잘 어우러져 있다. 화단과 해변을 따라 오솔길은 이어진다.. 벤치에는 병약해 보이는 노신사가 홀로 늦은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희미한 미소로 어색함을 대신한다.

덜컥 걱정이 앞선다. 5년 만에 찾아가는 카페 페네르 쿄스큐Fener Köskü가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그 때 그 어리고 키 작은 웨이터는 아직 있을까. 큰길 건너로 아담하면서도 투박한 건물이 멀리 보인다. 다행히 여전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외부는 무엇을 하였다기보다는 특별히 하지 않았다는 쪽에 가깝다. 오랜 세월 흘러내린 빗물 자국은 흘러간 세월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키 작은 웨이터는 볼 수 없었지만 벽과 천장의 빛 바랜 황금색은 그대로다. 크지 않은 창문 사이로 환한 햇살이 비친다.

카페 페네르 쿄스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연전 들렀을 때 친절한 노 지배인은 1,500년대 중반 처음으로 이 지역에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 카페는 1,600년대 지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 건축양식이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증, 개축이 이루어져 뚜렷한 특징을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카페 페네르 쿄스큐는 인류 최초의 커피점은 아니지만, 1600년대에 생긴 오래된 카페이다.

터키식 커피를 주문한다. 창문 너머 골든 혼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배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한 폭의 퐁경화다. 마지막 목적지에 다다른 감격에 터키식 커피를 앞에 두고 숙연해진다. 무엇보다 건강히 전 일정을 마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터키 골든 혼에서 이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대한 커피와 문화의 역사 앞에 한없이 초라한 스스로이지만, 그래도 출발은 했다는 엄연한 사실에 뿌듯하다. 많은 이들이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 일에 열정을 다해 함께해준 대원들이 더없이 고맙다.

아름다운 바닷가 골든 혼을 가슴에 담아둔 채 발길을 돌린다. 오솔길은 예전 그대로다. 두려움과 중압감까지도 지나고 보면 오히려 이렇게 신선한 것을 그리도 가슴 조이며 힘들어했단 말인가. 기억 속에 담아두었던 아련한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이 길을 또 걸을 수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굳게 다짐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니 여행은 곧 다시 시작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