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아프리카 커피의 희망을 보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아프리카 커피의 희망을 보다 아디스아바바 바리스타 대회

아디스아바바Addis Abba의 동이 튼다. 그 옛날 아비시니아Abbysinia 고원을 넘고 홍해를 건너 남부 아라비아(지금의 예멘)와 메카Mecca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펼쳤던 초강대국 에티오피아. 꿈틀대는 검은 대륙의 뜨거운 열기가 조용한 아침을 걷어내고 있다.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다. 새벽의 푸른 빛, 따뜻한 아침기운, 낡은 담장과 낮선 열대식물들, 바삐 오가는 정겨운 얼굴들은 이방인의 기웃거림을 반갑게 맞는다. 해발 3.200m 엔토토 언덕Mount Entoto 너머로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 과거의 영화를 상상하며 오늘의 옹색함을 바라보기가 안쓰럽다. 그러나 그 옛날, 유럽 각국들이 이슬람제국의 한 변방으로 인식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은 아닐까?

에티오피아 최고의 바리스타들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 참가할 사람을 뽑기 위해 열린 제 4회 아프리카 파인커피 콘퍼런스.

우선 아프리카 바리스타들이 실력을 겨루는 현장을 찾았다. 아디스의 유엔빌딩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프리카 파인커피 협회 (EAFCA : Eastern African Fine Coffees Association) 주최의 제 4회 아프리카 파인커피 콘퍼런스African Fine Coffee Conference&Exhibition다. 부룬디, 에티오피아, 케냐,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르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짐바브웨 11개국이 참여하는 이 콘퍼런스는 커피생산지를 탐방하고, 품질 향상과 생산량 증대를 위한 세미나 등을 여는, 아프리카 커피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귀한 기회다.

한편에서는 바리스타 챔피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승자는 상금 250달러와 함께 7월 도쿄에서 열리는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의 에티오피아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행사를 열심히 준비한 흔적이 이곳 저곳에 묻어나 있다. 3그룹 반자동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머신 두 대가 빛을 발하고 있다. 대회장은 진지하다. 출전자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에 몰두해있고, 응원하는 관중들도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예선에서는 20분 안에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 심사위원은 바리스타 곁에서 숙련도, 정밀도, 시간을 평가한다.

대회 운영진으로부터 인터뷰 허가를 받아두었다. 12명의 본선 진출자는 대개 아디스아바바의 호텔 식음료 부문 베테랑들이다. 막 경연을 마친 가부르(Mr. Gebru Wolde)와 인터뷰 한다. W호텔에서 10년 간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도 이번 대회는 새로운 도전이라 한다. 경연 중 물컵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지만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20분 안에 4잔의 에스프레소, 4잔의 카푸치노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본선에서라면 15분 만에 4잔의 프리스타일 메뉴까지 더 만들어야 하는데, 예선에서부터 힘이 부쳐서는 곤란하다. 무사히 시간 안에 마쳤다는 안도감이 역력한 그에게 바리스타로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바리스타는 전문가입니다. 질 좋은 커피, 신선한 우유, 커피머신에 바리스타 개인의 인간적 매력이 합쳐져야 하지요.”

챔피언십의 심사위원들. 커피의 맛과 향뿐 아니라 청결도와 서빙 태도도 심사 대상이다.

심사위원들도 인터뷰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 커피협회 컨설턴트로 3년간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인 심사위원Judge 루키아(Ms. Roukiat Delrue)는 2주전부터 이 곳 아디스에서 본선 진출자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그녀는 심사기준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심사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됩니다. 전체적인 진행을 총괄하는 심사위원장Head Judge 한 명과 두 명의 기술 심사위원Technical Judge 그리고 네 명의 관능 심사위원Sensory Judge이 있습니다. 기술 심사위원은 바리스타 가까이에서 숙련도⋅정밀도⋅시간 등을 평가하고, 관능 심사위원은 커피의 모양⋅농도⋅맛 등을 평가해서 이 점수를 합산합니다. 평가서는 매 경연이 끝나는 대로 별도의 심사실에서 비공개로 합산 평가됩니다.”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바리스타들의 수준에 대해 물었다. “저는 2주 동안 이들을 훈련시켜왔으며, 이들의 수준은 매우 향상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고향이지만, 바리스타 대회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제적인 바리스타 수준에 다가가려는 에티오피아 바리스타들에게는 국제대회에 도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입니다.”

바리스타의 역할에 대해서는 월드 바리스타 기술부문 심사위원이며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장인 캐나다인 존 센더스(Mr. John Sanders)가 답한다.

“어느 부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커피 농가의 품질 향상 노력에 많은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농가들이 잘 익은 커피체리를 골라내고, 로스터들이 이들을 잘 볶아준다 해도, 바리스타들이 좋은 커피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모든 과정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지요. 바리스타의 손끝에서 커피의 모든 것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정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다음 참가자가 준비하는 동안 잠시 상념에 젖는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바리스타를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당부하곤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커피는 우리 입에 올 때까지, 씨앗을 뿌리는 단계에서 시작해, 24단계의 복잡하고 오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진정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능숙한 기술을 갖추기에 앞서 그 단계들을 하나하나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인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변화하며 전해오는 커피 문화의 다양성을 가슴에 담으려는 노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커피를 마심에 있어 바리스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부가 힘들게 재배한 커피 원두와 커피를 볶은 로스터의 정성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잘 전해지기 위해서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커피를 배우려는 수많은 청년들은 유능한 바리스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는 한국 커피업계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재배, 수확, 밀링, 트레이딩 등 커피 업계 전 분야에 걸친 진출이 있기를 기대한다.

커피 박물관에서는 로스터와 바리스타를 상시 채용하고 있다. 인터뷰에서는 제일 먼저 ”커피를 배워서 무얼 하려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대개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열심히 배우고 돈을 모아 작지만 나만의 커피전문점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정답이 있지는 않겠지만, 내가 바라는 답은 조금 다르다. ”우리 나라, 나아가 세계 커피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당차게 대답하는 청년을 기대한다.

오늘날처럼 자유분방하고 주장과 요구가 뚜렷한 젊은 친구들에게 고리타분한 삼국지식 대답을 들으려 하니 내 생각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간 이런 청년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일본 UCC 커피의 우에시마 회장을 만나다.

분주히 대회장을 오가는데 누군가 우리 대원의 어깨를 두드린다. 동양인의 뒷모습이 반가워 다가가니 UCC커피의 우에시마(Mr. Tatsushi Ueshima)회장이다.

일본에서 UCC 커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우에시마 회장. 그의 눈빛은 청년처럼 살아있다.

1989년 늦여름 일본의 작은 커피 회사를 처음 방문하고는 커피의 신천지를 만난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그리고 이듬해, 고베의 UCC 커피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UCC 커피 박물관은 내 추억의 울타리 안에 고스란히 머물고 있다. 나는 아직도 박물관 사진들이 빼곡히 차있는 낡은 앨범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내게 커피 박물관의 꿈을 갖게 해준 이, 그가 바로 내 앞에 있는 UCC 커피 우에시마 회장이다. 우에시마 회장이 환한 웃음으로 내게 악수를 청한다. 혈기왕성한 청년 같은 모습이다. 한창 커피공부를 시작할 무렵 몇 번이고 들쳐보았던 잡지의 사진 속 인물을 지구 반대편 에티오피아에서 만났다. .

나는 커피 탐험대와 대원들, 2006년 8월에 문을 연 커피 박물관 이야기를 들러준다. 코나의 UCC 농장에 자주 들렀다는 것과 자마이카 블루마운틴의 UCC 클레이튼스 농장 Claytons Estate 을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놀라는 기색이다. 그에게 UCC 커피가 바라보는 아프리카 커피산업에 대해 인터뷰를 청했다.

“네, 지금 아프리카 커피 산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생산량과 품질 모두 좋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커피” 하면 중남미였고, 아프리카는 로버스타 종이라,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라비카 종으로 변하고 있지요. 일본에서는 주로 중남미의 아라비카 커피를 마셨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의 커피를 마시고 있지요. 아프리카의 커피가 잘 손질된 아라비카 종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커피 품질은 매우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외부로 다니는 시간이 많다.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요란한 수행원들은 따로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 어느 커피 산지를 가보아도 일본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세계 구석구석의 커피산지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이곳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도 일본인의 발걸음을 만나지 않았는가.

우에시마 회장은 에티오피아의 거대 무역회사 모프라코Moplaco의 지오갈리스(Mr. Yanni Georgalis)사장을 소개해주었다. 하라르에 갈 계획이라는 말에, 디레다와Dire Dawa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 꼭 들르라 한다. “커피는 내 심장이며 영혼이자 역사입니다. 나의 모든 것입니다”라는 우에시마 회장은, 한국 방문길에 꼭 들르겠다는 말을 남긴 채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오랫동안 잊지 못할 소중한 만남이다. 앞으로 있을 그와의 재회를 그려본다.

왼쪽부터 우에시마 회장, 심사위원 루키아, 에티오피아의 무역회사 모프라코의 사장 지오갈리스, 그리고 필자.

이곳저곳 다니느라 대원들 모두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콘퍼런스 주최 측에서 탐험대에 저녁파티 초대장을 건넨다. 해질 무렵, 시내로 들어선다. 이제야 비로소 아디스아바바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눈앞으로 지나치는 남루한 행색, 작고 낡은 초라한 주택, 푸른색의 러시아제 라다 택시, 매캐한 매연,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빈손을 내밀고는 “기브 미 원 달러Give me one dollar”를 외치는 맑은 눈망울의 아이들. 세계가 공통의 과제로 삼아야 할 빈부 격차를 절감한다.

우뚝 솟은 현대식 건물의 파티장은 오랜 역사보다는 눈앞에 닥친 현실과 다가올 미래를 우위에 둔 선택의 결과물이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실내를 휘감고 있다. 밴드는 현란한 몸짓으로 아프리카 노래를 부른다. 흥에 겨워 다들 어깨를 들썩인다. 어색해하는 대원들에게 편히 즐기라 당부해보지만 익숙지 않은 듯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커피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낮에 대회장에서 만난 루키아와 존은 이미 와인 몇 잔에 흥이 돋아있다. 대회장에서의 근엄함은 온데간데없다. 한국 커피시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일본의 커피회사 사장인 호리구치(Mr. Toshihide Horiguchi)와도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일본인 청년 몇몇은 유난히 눈에 띈다. 다시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넓고 큰 세상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싶다. 이런 곳에서 반갑게 한국말로 인사 나누고 싶다. 밤을 새워 커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런 생각들에 취한 발걸음을 아디스의 허름한 숙소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