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커피의 경로를 따라 – 하라르 가는길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커피의 경로를 따라 - 하라르 가는 길

에티오피아 커피 전문점 – 칼디

에티오피아의 ‘칼디 커피점’. 이곳의 커피 문화도 점점 서구화되어 간다.

지부티 대사관을 찾아가는 길에 ‘칼디 커피점’이 보여 급히 차를 세웠다. 지난 바리스타 챔피언 대회에 출전한 칼디 커피점 소속의 바리스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긴장하여 상기된 목소리로 자신의 커피를 소개하던, 흰색 전통 의상이 썩 잘 어울리던, 본선 탈락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없이 대회장을 빠져나가던 청년이다. 한 직원에게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부탁했다. 매니저에게 탐험대를 소개하자 반갑게 안으로 맞는다.

주방을 지나 뒤뜰로 향한다. 잘 꾸며진 현대식 빵공장에는 여직원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가 칼디 커피 사장을 만났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파일럿 남편을 둔 미인대회 출신의 체다이 Tseday Asrat 사장은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바리스타 대회장에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우리가 떠드는 소리며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반가움에 다시 한 번 힘주어 악수를 청했다.

칼디 커피점의 사장 체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날 본선에서 떨어진 칼디의 바리스타를 만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매장에서 근무한다고 알려준 그녀는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칼디 커피를 소개한다. “3년 전에 설립되어 현재 4개의 지점이 아디스에 있습니다. 연내에 8호점을 개점할 준비를 하고 있고 5년 안에 40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커피문화를 현대화하여 세계에 소개하려 하며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로 제공할 것입니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입니다. 현재는 200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2.000명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많고 일자리가 귀한 에티오피아다보니 칼디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은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깔끔한 유니폼에 쾌적한 근무환경, 게다가 자유분방한 분위기까지, 아디스의 젊은이들에게는 칼디에서 일하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칼디의 전설에 대해 질문을 이어간다. 사실 커피의 고향 짐마에서조차 거의 모든 농민들이 칼디에 대해 알지 못했다. 커피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은 강했지만 전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곳 손님들은 어떤지 물어본다.

“우리 손님들은 대개가 에티오피아의 젊은이들이지만 칼디의 전설은 모릅니다. 많은 손님들이 칼디라는 이름에 대해 물어오지요. 우리는 커피의 전설을 자세히 들려줍니다. 전설을 역사책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선조들로부터 구전되어오는 것이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자부심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인이든 외국인이든 우리를 통해 칼디의 전설을 알게 됩니다.”

칼디의 전설을 담은 그림. 이 이야기를 아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커피문화의 변화에 대해 그녀는 말을 잇는다.
“우리에겐 훌륭한 전통이 있습니다만 더 이상 머물러만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상업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젊은 고객들은 빠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원합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주차하면 달려가 차 안에서 주문을 받습니다. 좋은 품질의 커피를 바쁜 손님에게 제공하려는 우리만의 서비스이지요. 우리는 고객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그녀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생각은 뚜렷하다. 1시간이나 걸리는 커피 세리모니는 몇 년 후쯤에는 이곳 에티오피아에서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약속 시간을 잡지마라.’ ‘아프리카에서는 서두르지 마라.’는 말은 이곳 아디스에서는 옛 속담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급한 손님을 위해’라는 얘길 듣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커피와 함께하는 단 몇 분만이라도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는 “그래, 그럴테지……”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프리카에 오면 누구나 듣게되는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 ‘하쿠나마타타(걱정마. 문제없어)’가 오늘은 더 정겹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두 번을 만난 인연의 고리가 언제 다시 이어질지. 서로가 커피와 연하여 살고 있으니 어디서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

지부티 대사관 카트 할아버지

아디스 시내의 모습

지부티 대사관 현관은 굳게 닫혀 있다. 한참을 두드리고 나서야 경비원인 듯한 노인이 얼굴을 삐쭉 내민다. 비자 때문에 왔다 하자 다짜고짜 하는 말이, “끝났다.” 노인은 막무가내다. 입 주위와 입안이며 이빨 모두에 퍼런 물이 들었다. 아니 초록이 짙어 푸른 끼가 돈다고 해야겠다. 카트 Khat, Qat – 혹은 차트Chat 라고도 부름- 를 씹은 탓이다. 카트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마약’으로 분류한 바 있다.

책에서 보았던 카트 씹는 사람이 눈 앞에 있다. 행동이 부자연스럽진 않았으나 정신은 분명 이상해 보였다. 작은 나라 지부티라고 해도 일국의 대사관 출입문을 지키는 사람이 대낮부터 카트에 절어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내일 오전 중에 오라며 홱 돌아섰다. 비자 접수는 오전에만 한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금쪽같은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간다.

대원들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다. 내일 아침 서둘러 한국 대사관부터 찾아가야 한다. 비자에 쓰일 신원증명서를 지부티, 예멘 것까지 받아야 한다. 만약 지부티까지만 서류를 해준다면 큰 낭패다. 지부티에서 예멘을 무작정 들어갈 수도 없다.

예멘에 관해 알고 있는 소식은 1998년 영국, 미국인 관광객 16명 납치사건이 전부라 사실 두렵다. 지부티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어 서류를 받기 위해서는 이곳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우편이나 팩스로 보내주어야 한다. 서류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지부티에 머물던지 아니면 이곳 아디스에 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사나로 가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다면 홍해는 포기해야 한다. 사나에서 모카나 아덴까지는 또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하라르까지 550km는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다행히 한국 대사관 서류는 잘 처리됐다. 아침인데도 지부티 대사관 카트 할아버지는 입 주위가 퍼렇다. 여권은 내일 3시면 찾을 수 있다. 인심 고약한 카트 할아버지를 내일 한번 더 만나야 하겠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비자 문제는 한시름 놓았으니, 이제 닥친 문제는 하라르로 가는 차편이다. 러시아제 라다택시를 이용해 기차역으로 갔다. 짐마를 떠난 커피는 아디스에서 등급이 매겨지고 주인이 정해져, 이곳 기차역을 통해 홍해로 향한다.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기차를 타려 했다. 그러나 기차역은 황량할 뿐이다. 텅 빈 대합실과 철로변을 서성이는 두 사람이 전부다. 하라르나 디르다와로 가는 기차 편은 없다고 한다. 화물 기차가 있긴 해도 정해진 시간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물이 다 차면 떠난다니,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난감한 상황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시외버스는 새벽 6시에 출발하는 것밖에 없다. 값이 싸고 안전해 탐험대로서는 안성맞춤이지만, 버스를 타려면 내일 오후 3시 지부티 대사관에서 여권을 찾고, 아디스에서 다시 하루를 보낸 뒤 모레 새벽에야 출발할 수 있다. 하라르 도착은 모래 오후가 될 테니 또 다시 이틀을 더 까먹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홍해는 근처도 못 가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진다.

현지인 가이드 숄레이에게 오후에 출발할 차를 빌려보라 했다. 숄레이는 고개를 크게 가로젓는다. 밤중에 하라르로 가는 길은 현지인들도 꺼리는 일이다. 오후 3시에 출발하자 하니 기사들도 다들 뒤로 물러선다. 최근 하라르 가는 노상에서 강도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이 탑승한 듯한 차량은 무조건 납치해 물품은 물론 목숨까지 앗아 간다는 것이다. 출발 전 아프리카에서 사자밥이 될까 걱정을 했지, 납치와 테러의 대상이 될 줄이야…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바거러시 커피 공장을 찾아

농무성 책임자는 자신들이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아침 8시 30분에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교통편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 커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로 퍼져나가는지 반드시 짚어봐야 했다. 에티오피아 농무성Ministry of Agriculture & Rural Development을 수소문 끝에 찾았다. 7층 사무실에서 농산물 부문 책임자인 아세파Assefa Mullugeta를 만났다. 그는 자기들이 수행하고 있는 커피산업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농무성의 각 지역별 품질관리 위원회는 관할 지역 농민들을 지도 관리하고, 이곳 중앙 위원회에서는 관능 검사와 컵핑을 통해 엄격한 등급심사를 하고 있다 한다. 이 시스템이 수출 상품의 체계적 관리와 에티오피아 커피의 이미지 제고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짐마 대학의 아두나 학장이나 망게같은 이들이 시골 구석구석에서 몸으로 뛰고 있는 덕에 중앙의 관료들이 이런 큰 소리를 치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말이 공허하게만 들린다.

망게의 보레 분나에서 수확이 끝난 커피 체리는 파치먼트 상태로 마대에 쌓인 채 트럭에 실려 이곳 아디스로 옮겨진다. 이미 농부들의 한숨과 거친 손길을 수없이 거쳤지만 커피는 이곳에서 거듭난다. 에티오피아 거대 커피수출상 중 하나인 ‘바거러시Bagersh’를 찾는다. 공장 밖에는 여러 대의 트럭에 커피 마대가 실려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커피들이 마지막 공정을 거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940년경에 지어진 목조건물이라지만 단단해 보인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소음과 열기가 가득하다. 바로 옆 사람과 말을 주고 받을 때에도 귀에 대고 해야 할 지경이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수출하는 주요 관문인 아디스아바바에는 커피 원두를 실은 화물차들이 거리를 메운다.

트럭 위로 사다리 넓이의 긴 나무판이 놓인다. 그 큰 마대를 한 사람씩 줄지어 어깨 위로 짊어진다. 사람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판이 크게 출렁인다. 트럭만큼이나 큰 나무 호퍼Hopper에 쏟아 붓는다. 파치먼트 스킨을 제거하는 첫 번째 기계를 거친다. 그린빈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스크린 테이블로 향하고, 파치먼트 스킨은 따로 모아 사료공장으로 보내진다. 크기에 따라 선별하는 스크리닝Screening 기계를 거치면서 원두는 각각 다른 벨트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속이 비거나 일그러진 생두는 중력에 의해 따로 분류되고, 내수용으로 판매된다. 이제 마지막 손질을 거치기 위해 길이가 각각 30미터쯤 되는 5대의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진다. 벨트 좌우로는 색색의 네탈라를 두르고 있는 여인들이 쉴 새 없이 손을 놀리고 있다. 족히 300명은 되어 보인다. 그래도 남아있을 썩거나 깨진 생두를 하나 하나 손으로 골라내는 수고스러운 마지막 선별작업이다. 이제 갓 아이 티를 벗은 젊은 처녀부터 할머니에 가까운 여인까지, 마치 경연대회라도 치르는 듯, 아니면 축제라도 하는 듯 요란하다. 시끄러운 기계음에도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다들 웃고 떠든다. 손은 여전히 바쁘다. 한쪽 구석에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린다.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합창이 되어 공장 안에 울려 퍼졌다. 삶의 고단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격정적인 노래. 환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히 장관이다.

농부의 땀과 손길을 거친 커피 체리는 다시 이 여인들의 수고스러운 손길을 거치게 된다.

공장 안 사무실에서 분나 한 잔을 대접받았다. 커피가 식어 맛은 조금 덜 했지만 60년 커피 역사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창업주의 손자인 압둘라 바거러시Abullah는 외부에서 일을 보던 중 탐험대의 방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그의 자세에서 선조의 정신이 대물림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바거러시는 커피 가공과 수출에 오랜 경험이 있어 에티오피아 옥션 뿐 아니라, 지부티 항을 통해 일본, 유럽, 미국, 호주 등 1.000여개의 커피 생산업체에 원두를 공급하고 있다.

그는 그 옛날 카파의 커피가 지부티 항을 통해 예멘으로, 예멘에서 암스테르담, 라틴아메리카 등지로 퍼져나간 경로와 탐험대의 경로가 꼭 같다며 우리의 탐험에 경의를 표했다.

아프리카 최대의 재래시장 메르카토

메르카토에서는 다양한 농산물과 함께 각지에서 생산된 커피 원두를 팔고 있다.

하라르 행 차편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 커피점에서 점심으로 인제라를 앞에 둔 채 대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누구도 자신 있게 나설 형편이 아니다. ‘안전 우선’이라는 대명제 앞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밤중 한적한 산길에서 자동차 불빛만 보고 차를 멈춰 세운다. 총으로 위협한다. 운전수가 한패가 되어 강도로 돌변한다는 말도 들린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는가.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할 상황이다. 중압감, 소외감 그리고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정말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넉넉지 않은 박물관 사정에 이 곳까지 와서 이 지경에 놓이게 되다니, 한심한 생각도 든다.

고민하던 하라르행 차편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결국 1,400비르에 마이크로버스를 빌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느 운전수도 야간 운행이라며 나서지 않던 중, 한 명이 나섰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운전수 아마레Amare는 태도가 건들건들, 불량해 보인다. 사실은 주위를 둘러싼 운전수 모두가 그랬지만.

아무 것도,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숄레이도 반신반의하는 듯 자동차 번호며 아마레의 인적사항을 수첩에 꼼꼼히 적는다. 700비르는 출발할 때, 나머지 700비르는 도착해서 주기로 했다. 무사히 도착할 수만 있다면 팁도 듬뿍 줄 생각이다.

세 시가 조금 지나 지부티 대사관을 찾는다. 카트 할아버지를 세 번 만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부티 비자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받고 보니 그런 그도 사랑스럽다. 아마레의 마이크로 버스는 아프리카 최대의 재래시장 메르카토Merkato(혹은 Mercato)를 향한다. 이탈리아어로 마켓Market이라는 메르카토는 아디스 인근의 농산품과 중국산 값싼 공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내수용 커피는 대부분 이곳에서 거래되고 있다.

메르카토는 우리 쌀시장처럼 다양한 품종의 커피가 거래된다.

작은 노점상들이 즐비한 메르카토 골목 골목에서 커피상인들이 호객을 한다. 내수용 낡은 마대에 담긴 커피는 종류별로 다양하다. 여기서 최고급 품질이라는 것은 대략 수출용 2등품에 해당한다. 바거러시에서 본 하급품들이 주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군데군데 돌멩이와 나뭇가지도 섞여 있다. 시내의 레스토랑 주인이 한 상점에서 10킬로그램을 사고 있다. 하급품을 사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그는 우리에게 에티오피아 최고의 커피를 사용해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라르로 향하는 길

하라르까지 가는 밤길, 내게로 쏟아지던 별빛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하라르로 향하는 길은 에티오피아의 대동맥답게 잘 닦여있다. 출발할 때 아마레는 조수석에 한 사람을 더 태운다. 놀라 누구냐고 물었더니 조수란다. 다행히 운전 솜씨는 기대 이상이다. 열 다섯 살 때부터 운전을 배웠다한다. 10시간 조금 넘게 걸릴 것이라며 백미러를 흘깃 쳐다본다. 조수가 사온 짜뜨 한아름이 다 없어져야 하라르에 도착할 것 같다. 낮부터 씹어온 짜뜨로 지금 이미 아마레는 구름 위에 떠있는 건 아닐까. 가는 내내 검문을 한다. 무엇 때문이지 모를 일이지만, 차를 세울 때마다 ‘혹시?’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등산용 스틱과 주머니칼을 움켜쥔다. 운전석 뒤 두 번째 칸에서 비몽사몽, 꿈과 현실을 오간다.

별이 쏟아진다. 투명하게 맑은 밤 하늘에 불꽃 놀이를 하는 듯하다. 온통 내게로 쏟아지는 별빛은 밝다 못해 시리다. 시린 별은 짙푸른 밤하늘에 가득 떠있고 사막 한가운데에는 마이크로버스가 한 대가 소리 없이 달린다. 어린 시절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광경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개가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시간이 갈수록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온몸이 무겁다. 짐마에서 부터 아팠던 눈이 내내 괴롭힌다. 열대의 아프리카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

운전사 아마레와 조수 녀석은 카트에 미쳐있다. 다행히도 카트는 얼마 남지 않았다. 띄엄띄엄 불을 밝힌 집들이 보인다. 앞뒤로 대원들을 둘러본다. 얼마나 마음들을 졸였을까. 애써 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들이 안쓰럽다. 위험천만한 내 결정을 말없이 따라준 대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새벽 3시, 하라르에 도착했다. 고요하다. 참으로 멀고도 긴 여정이다. 어찌 왔는지 별무리 외엔 기억이 없다. 아마레에게 약속한 나머지 700비르와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팁을 쥐어주었다. 무사히 도착한 감격에 겨워 여러 번 그에게 고맙다 인사하자 그도 연신 고맙다 한다. 아마레는 아디스로 돌아가는 길에 카트가 필요하다며 얼른 차를 돌린다. 그의 돌아갈 길을 염려하는 우리에게 그는 답한다.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