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랭보가 사랑한 하라르 커피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랭보가 사랑한 하라르 커피

에티오피아의 이슬람 도시 하라르. 하라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도 보고 싶었던 하라르 게이트로 들어선다. 마코넨 왕자Prince Makonnen가 부친의 즉위를 기념하여 만든 하라르 게이트는 하라르의 랜드마크이자 올드 하라르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이다. 에티오피아 영토지만 하라르는 딴 나라 같다. 코발트빛 벽면이며 황금색 장식문양, 평평한 옥상을 하고 있는 다층구조의 건축양식 그리고, 뾰족 첨탑… 아프리카, 인도, 아랍,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총망라된 기묘한 분위기다. 하라르는 인구의 90%가 무슬림으로 1902년, 디레다와에 철로가 놓이기 전까지 세계로 향하는 유일한 무역 중심지였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도시 전체를 둘러싼 성벽과 좁은 미로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하라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랭보와 함께 기억되는 곳이다. 흙먼지 가득한 골목을 지나 랭보하우스를 찾았다.

랭보하우스를 찾아 곧게 뻗은 성안 중심지를 걷는다. 사람들은 밝다. 흙먼지가 대단하다. 흙먼지와 매연이 없으면 어디든 아프리카라 부르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꼬마들이 뒤를 따른다. 스튜어트Stewart L. Allen가 쓴 [커피 견문록]에 묘사된 것만큼, 랭보하우스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골목길 흙벽 위 나무처마 끝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인도식 나무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복원된 랭보의 서가를 둘러본다. 세기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지런히 꽂힌 서가의 책들을 통해 랭보의 숨결을 더듬어 본다.

하라르에서 커피 수출을 담당했던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 1854~1891)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사장까지 역임하였다. 사진은 커피나무를 뒤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랭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는 1854년 프랑스 파리의 동부 샤를르빌Charleville 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인 1869년부터 1875년까지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는 동성 연인 베를렌Paul Marie Verlaine과의 갈등과 프랑스 지식사회에 대한 환멸을 뒤로한 채 유럽 각국을 떠돌아 다닌다.

지중해, 키프로스를 거쳐 1880년 25살의 나이에 아덴에 도착한 랭보는 프랑스 무역회사 알프레드 앤 피에르 베르디 Alfred & Pierre Bardey의 커피밀에 중간 관리자로 취직하면서 커피와 인연을 맺는다. 당시의 유럽 특히 프랑스는 서부 아프리카 식민지의 로버스타를 대신해 질 좋은 아라비카 커피를 예멘으로부터 전량 수입하던 때이다. 1869년 개통된 수에즈 운하 덕에 예멘 커피수출량의 절반 가량을 프랑스로 수출했으니 이 때의 랭보는 일 속에 파묻혀 살았을 것이다.

커피체리는 북부예멘의 산지로부터 낙타 등에 실려 운반되었다. 드라이밀을 거친 커피는 지중해를 거쳐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전해졌다. 랭보는 커피 공장에 수많은 인도 군인의 부인들을 고용해 생산성을 높였고, 이로 인해 그의 평판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풀 한 포기 없는 아덴의 바위산에 대한 염증, 깨끗하게 마실 물이 절실히 그립다는 내용의 편지 여러 통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 내용이 오너 피에르 베르디에게 알려지면서 하라르에 지사가 설치되었다. 랭보는 재계약 연장을 요청받지만 무기 밀매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891년 4월 관절염과 이름 모를 몹쓸 병을 견디지 못하고 하라르를 떠나 마르세이유로 향한다. 같은 해 11월, 3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하라르의 랭보하우스. 2층 목조가옥에 1층에는 하라르 관련 도서가, 2층에는 랭보 사진과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라르를 떠난 후 그가 머물렀던 이 아름다운 집은, 1898년 새롭게 랭보하우스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네스코 기금으로 근근이 유지되어왔던 랭보하우스는 더 이상 기금부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커피나무를 뒤로하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랭보의 사진 앞에서 공식안내원이 설명한다.

“랭보는 하라르에 도착하자마자 소말리아 사람들이 이끄는 낙타 카라반을 이용해 많은 양의 커피를 아덴에 팝니다. 커피와 함께 상아도 팔았습니다. 하라르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사업은 그만두었지만 늘 하라르의 커피를 즐겼습니다. 하라르에서는 자신의 커피 가든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 자주 하라르 커피의 매력에 대해 자세히 썼습니다.”

고즈넉한 느낌이다. 시간이 그때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꼭대기로 올라오자 골목길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상상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방이 창으로 뚫려 시야가 탁 트여있다. 건조하면서도 초록이 스며있었다. 멀리 무수히 솟아있는 이탈리안 무슬림의 코발트빛 첨탑이 인상적이다. 낙타 등에 실려 사막을 건너 홍해를 건넜을 랭보의 커피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속내를 알 수 없다. 이것저것에 관심을 기울였던 정황들을 살펴보면 그에게 커피는 그저 삶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너무 심한 예단일까? 아랍인들은 하라르 커피를 시다모, 예르가체프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다. 하라르에 와서야 비로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하라르식 버터 커피, 세리 분을 맛보다

랭보하우스를 나서자, 아이들 무리 중에 있던 그중 키가 크고 눈치 빠르게 생긴 하이루Hailu가 불쑥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선다. 잘생긴 하라리 청년 하이루는 능숙하게 영어, 불어를 해댄다. 이 친구는 못하는 게 없어 보인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만의 하라르 커피 예찬론을 술술 풀어놓는다.

“하라르 커피는 축복받았죠. 신이 축복을 내린 것인데. 커피를 로스팅할 때 시다모와는 달리 하라르 커피는 풍부한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신이 축복 내린 땅, 풍부한 미네랄이 넘치는 하라르 커피 향은 몸속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죠. 하라르의 모든 집에서는 아침에 로스팅을 합니다. 친구와 가족들을 불러 향을 맡게 하고 이때 그 향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는 갈아서 커피를 만들고 마시지요. 저를 따라 오세요”

하이루와 아이들을 따라 좁은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따라나선다. 골목길마다 벽돌담에는 카트씹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막으로 겨우 해를 가린 노점에는 야채며 콩과 함께 커피가 나란히 팔리고 있다. 오랜 가뭄 탓에 물이 귀해 식수차 앞에는 아이들이 지루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서있다. 아이들이 조심스레 다루고 있는 염소와 양들은 이곳 하라르에서도 소중한 자산으로 대접받는 모양이다.

하이루가 자신의 친척집이라며 안내한다. 작은 마당을 지나 곧바로 사랑방과 침실을 겸한 거실로 들어간다. 현란한 색상의 카펫이 깔려있고 노란색의 벽과 밤색의 장식무늬가 잘 어울린다. 밖은 무더운 한낮인데 집안은 생각보다 시원하다. 주인 할머니는 대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더니 익숙한 솜씨로 향로에 향을 피운다. 이슬람 기도문을 외우는 할머니에게서 경건함이 느껴진다.

버터커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태양 아래 잘 말린 커피체리, 버터, 설탕, 숯이다.

태양 아래 잘 말려 딱딱해진 커피체리를 짚 바구니에 수북히 쌓아 내온다. 할머니는 좀 더 큰 소리로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운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께서 제사 지낼 때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쪽 끝을 깨물어 깨알만한 구멍을 내고는 입안에 남은 껍질은 카펫 바닥으로 ‘퉤’하고 뱉는다. 깨문 커피체리 9개를 모아 나무접시에 담고 다시 기도문을 외운다. ‘99의 모스크와 신’을 뜻 한다고 한다. 몇 해 전 터키 파묵칼레의 한 시골 점술사가 숫자 ‘9’는 ‘3’의 세 배이므로 완전함을 나타내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대원들 모두 커피껍질을 깨물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퉤, 퉤……’거리는 소리가 신나기까지 한다. 방 안 가득 몰려온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 한다. 이는 체리에 버터가 잘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하나의 사실을 다르게도 볼 수 있겠으나 ‘커피 껍질을 까는 행위를 남녀의 섹스에 비유하는 분칼레Bunqalle 의식’으로 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이사람 저 사람의 침이 닿아 꺼림칙 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깨물어 낸 체리를 물에 씻은 후 주둥이 넓은 도자기 포트에 옮겨 담는다.

집에서 만든 염소와 양의 젖으로 만든 강한 향의 버터를 수제비처럼 뜯어 사이사이에 넣는다. 기도문을 외우는 할머니의 표정에는 진지함과 무덤덤함이 섞여있다. 마당 한 켠의 주방 화덕에 장작불을 붙인다. 도자기 포트에 노란 버터 한 덩어리를 다시 넣는다. 장작불 곁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기도문은 계속 이어진다. 굵은 설탕 한 대접을 포트에 넣고 휘휘 저은 후 대야에 담긴 찬물 위에 두고 식기를 기다린다. 포트에서는 완성된 세리 분Seri bune(혹은 Haseri bune)의 고소한 향이 진동한다.

그 사이 할머니는 얇은 팬 바렛 메타드를 장작불 위에 올려두고 말린 커피체리 껍질을 볶고 있다. 검게 타기 직전까지 볶은 후 주전자에 물과 체리껍질을 넣고 끓인다. 바질 잎의 일종인 딸레탐Taletom과 집에서 키워 짜낸 양젖을 넣고 한참을 끓인다. 커피 껍질 조각과 바질 잎이 조금씩 떠있지만 진한 우유빛 커피 껍질차는 입안의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름하여 ‘아시르 카하와Asher Qqhwa’다.

커피체리를 끓이다가 버터를 넣어 완성한 버터커피. 마치 신비의 약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안에는 어느새 인제라가 놓여져 있고 아이들은 방안에 가득 들어찬 지 이미 오래다. 아이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찢은 인제라 위에 나무접시에 담긴 세리분 한 스푼을 올려 보쌈처럼 싸서는 먹는 시늉을 하며 내게 건넨다. 초코칩 같은 고소한 맛이 난다. 이렇게 단 맛이 강한 음식은 어른이 되고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 아이들이 덤벼들자 대원들도 손놀림이 바빠진다. 다들 기대하면서도 두려운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놀라움과 기쁨의 탄성이 들려온다. 커피 껍질차는 알맞게 식어 마시기에 적당하다. 맛도 맛이지만 뱃속이 편해지는 느낌이 마치 효험있는 신비의 약을 마시는 듯하다.

버터커피를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의 한 종류라 말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커피가 이들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지는 잘 보여주고 있다. 기호식품으로서의 음료가 아닌, 먹을 것이 부족한 이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양식의 하나인 것이다. 커피 농사에서 질 좋은 커피는 주민들의 몫이 아니다. 우리네 할머니의 농사가 그러했듯 좋은 것은 내다 팔고 쭉정이만 겨우 가족들에게 먹일 수밖에 없었던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사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지 않을까. 커피를 커피로서가 아닌 껍질 말린 차로서 밖에 마실 수 없는 형편을 보며, 환대해준 할머니 집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린다. 멀리 코발트빛 이슬람 첨탑들이 산정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옥사데이를 방문하다

전 세계로 수출하는 옥사데이 커피. 말 문양이 인상적이다.

커피 재배할 땅을 점점 카트에 내어주고 있는 하라르를 뒤로한 채 디레다와로 향한다. 하라르와 인접해 있는 디레다와Dire Dawa는 오늘날 시멘트, 섬유 등 산업전반에 걸쳐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제2의 거대 인구집중 도시다. 디레다와는 아디스아바바에서 하라르를 거쳐 지부티로 계획되었던 철도가, 1902년 비용절감을 이유로 하라르의 체르체르Chercher 고원지대를 통과하는 대신, 뉴 하라르로 일컬어지는 지금의 시가지를 관통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디레다와의 아침은 요란한 오토바이 택시 투투의 소리로 시작한다.

하라르의 작은 로스팅 공장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옥사데이Ogsadey 커피회사에 연락한다. 반가운 목소리로 당장 만나자는 옥사데이 사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십 수년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사용해온 커피의 짙은 초록말 그림을 찾아 이 곳 디레다와에 왔다는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하라르 호스마크 커피는 나만의 커피인양 자랑스러워했던 내가 아니던가. 한국에서부터 준비한,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한 손에 움켜쥔다. 투투를 타고 디레다와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옥사데이 본사를 찾았다.

나지막한 단층건물에 MAO-Mohamed Abdullahi Ogsadey라는 회사명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탐험대 소개를 하자 한국에서 자신들의 커피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옥사데이 사장은 반색한다. 70년 전 설립된 회사 이력이며 설립자인 큰 아버지는 지난 해 향년 98세로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려준다. 지난 80년간 에피오피아를 대표하는 하라르 커피를 수출하고 있지만, 하라르 지역의 커피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라는 말을 잇는다. 지금은 하라르 주위의 넓은 지역 농가로부터 커피를 사서 이곳 디레다와에서 하라르 커피 이름으로 가공하여 수출한다며 장탄식을 한다.

회사의 상징인 황금장식의 말 모형

궁금해 하던 초록 말그림Horse Mark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커피를 말의 등에 지고 날랐는데, 설립자는 이 넘치는 힘을 뜻하는 호스 마크를 우리 회사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디레다와는 오래 전부터 말 시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준비해간 하라르 커피 봉지를 선물했다. 자신들이 생산한 커피가 한국에서 로스팅되어 다시 자신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위의 직원들에게 큰소리로 알린다.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앞뒤를 살핀다. 대원들 옆으로 무쇠 절구공이로 하라르 커피를 빻고 있던 나이 어린 여직원은 익숙한 솜씨로 커피를 끓여내온다. 오랫동안 늘 마셔오던 에티오피아 하라르 커피이지만 그 커피의 본고장인 하라르의 옥사데이 본사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마셔온 어느 하라르 커피보다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회사의 상징인 황금장식의 말 모형을 만져보라 건네주고는 공장으로 가자며 재촉한다.

옥사데이 공장은 비록 함석지붕에 낡은 벽돌 건물이지만 넓은 부지 위에 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디스아바바의 바거러시에서 설비가 낡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곳 옥사데이의 설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수동 가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들의 의지인가 아니면 부족한 자본 탓인가.

뿌연 곡물먼지와 요란한 기계음은 이곳도 다를 바 없다. 대낮인데도 환하게 불을 밝힌 공장 안은 열기로 후끈거린다. 오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멘트 바닥은 반질거려 미끄러질 정도다. 구식 헐링 머신을 통과해 파치먼트가 벗겨진 커피 생두는 컨베이어 밸트를 타고 여인들 앞으로 쏟아져 나온다. 5대의 컨베이어벨트 앞으로 300여명의 여인들이 질이 떨어지는 커피를 집어내고 있다. 핸드 픽킹Hand Picking이다. 벨트 밑으로 쌓인 생두는 높이 솟아있는 계량 호퍼로 옮겨진다.

건장한 청년들이 둘씩 짝을 지어 쉴 새 없이 내려오는 생두를 마대에 정확한 무게로 담는다. 자랑스러운 노란색 호스마크 인증서를 마대에 넣는다. 송곳처럼 생긴 크고 뾰족한 바늘을 이용해 굵은 마대끈 바느질을 한다. 한 마대를 바느질하는 시간은 불과 10초로 다들 일류 솜씨다. 그중 키가 유난히 커 눈에 띄던 한 청년은 놀라는 대원들을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씨익 웃는다. 널따란 보관 창고 한쪽으로 커피 마대들이 15층 높이로 차곡차곡 쌓인다.

옥사데이에서도 여인들이 손으로 커피를 골라내고 있었다.

바깥쪽 그늘아래에는 초록색 호스마크를 찍느라 세 사람이 분주하다. 알고 보면 그리도 간단한 것을… 마대 전체를 덮을만한 크기의 양철 판에 말 그림과 MAO 등 글씨들이 오려져 있다. 그저 큰 롤러와 붓으로 서너번 문지르기만 하면 끝난다. 짙은 초록색의 말 그림이 선명하다. 자마이카의 블루마운틴 마비스 뱅크를 방문했을 때 오크통에 새겨진 검은 색 글씨가 생각난다. 마크와 글씨를 오려낸 책받침 같은 얇은 판을 오크통 위에 덮고 검정 잉크를 칫솔에 둗혀 문지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각각 주어진 환경에서 도구는 다르지만 비슷한 원리가 통용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대 역시 공장에서 자체 제작하고 있으며 잉크도 인체에 무해한 천연 재료라며 잔뜩 잉크가 묻은 맨손을 내밀어 보인다. 초록잉크가 묻어 기이한 모습이지만 미소가 빛난다.

어느 틈엔가 대원들은 모두 벨트 앞 여인들 틈에 끼여 앉아 픽킹 작업을 하고 있다.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다. 피부색 외에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슬픔과 기쁨, 노여움과 사랑스러움에 대한 감정은 표현만 다를 뿐 한치의 차이도 없으리라.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깊을 것을.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쉬는 시간을 뺀 나머지 8시간을 일해 버는 돈은 10비르에 불과하지만 이나마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수월한 일은 아니다. 내일에 대한 기약은 없지만 그렇다고 희망마저 없는 것은 아니리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희망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 저녁노을 속으로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