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아프리카 커피로드의 마지막 관문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아프리카 커피로드의 마지막 관문

마타투를 달려 하라르를 떠난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다. 하라르 지역의 간다 케이어Ganda Caere지방으로 마타투를 달려 사막지대를 지난다. 간혹 지나치는 강줄기는 말라붙은 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군데군데 커피나무들이 보이지만 규모를 갖춘 곳은 보이지 않는다. 수확기가 끝나 더욱 볼품이 없고 나뭇잎은 말라 비틀어져 겨우 숨만 쉬고 있다. 아라비카의 명품 커피라는 말이 무색하다. 인적이 드문 강가, 얕은 언덕 위로 빨간 열매를 맺고 있는 커피나무가 눈에 띈다. 20년 째 커피농사를 짓고 있다는 강한 인상의 오로모족 농부가 경계의 눈빛으로 맞는다. 같은 에티오피아인이지만 암하릭어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통역을 자청하며 나타난 사람들 덕에 겨우 뜻이 통했다. 그는 커피농사는 올해가 마지막이라 한다. 이제부터는 병충해에도 강하고 키우기도 쉬운 카트 나무를 키울 생각이란다. 페어트레이드Fair Trade니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막 돌이나 지났을 아이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엄마 등에 업혀 콧물 흘리고 있다. 아이 엄마는 앙상한 커피나무 가지에서 따온 커피체리를 미리 준비해간 비닐봉지에 말없이 담는다. 약간의 돈을 쥐어주고 발길을 돌렸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 속으로 마타투는 달린다.

오로모족 농부는 올해로 커피 농사를 접는다고 한다. 병충해에 강하고 키우기 쉬운 카트를 키울 생각이란다.

지부티 가는 차편을 놓고 다시 머리를 맞댄다. 이동수단에 대한 고민은 탐험 내내 계속되고 있다. 역 앞 숙소에 묵으면서 혹시라도 커피 실은 기차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자꾸 철로로 눈이 간다. 오래 전 낙타 등에 실려 이곳을 지나쳤을 커피를 떠올려 본다. 철길이 뚫리던 1900년대 초, 기차에 실려 아디스아바바로부터 이곳 디르다와를 통해 홍해까지 갔을 커피. 열망하던 기차는 결국 포기하고 밤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로 결정했다. 6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숙소 주인의 귀띔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

랭보가 말한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아무도 몰랐다. 좀 편한 좌석에 앉을 요량으로 1시간 일찍 11시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말이 터미널이지 책상 하나에 고물 전화기 한 대가 전부인 두어 평 남짓한 파리 떼 득실거리는 사무실이다. 사람들은 보따리 짐과 한데 엉켜 낮부터 사무실 안팎에 진을 치고 있다. 어쩌면 어제 낮부터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무슨 의미일까. 30분이 지나도 출발은커녕 버스의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늦었다며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1시가 되어서야 거만한 걸음걸이의 운전수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버스 문을 연다. 차례와 질서는 어디에도 없다. 가까스로 앞뒤로 나란히 자릴 잡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붕 위에 실린 배낭이 걱정이지만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 이제 출발하겠거니 하고 기다리지만 사람들만 늘어날 뿐 시간이 지나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할아버지와는 너무 가깝게 붙어 이제 한 몸이 된 느낌이다. 작고 낡은 버스에 발 디딜 틈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장거리인 탓에 서서 갈 엄두를 못 내고 통로 가득 모두 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통로 쪽에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치열하다. 꼼짝달싹할 수 없다. 안전벨트가 없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안전벨트라니 웬 사치스런 말인가. 창문은 고장 나 아주 조금 열리고 만다. 어제 마신 레몬주스가 남긴 배탈 후유증이 다시 도진다. 휴지도 버스 위 배낭에 실려 있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출발한다. 출발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늦어지는데 대한 설명과 언제 떠날지,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과연 이대로 지부티까지 갈 수 있을까. 대원들 모두 출발도 하기 전부터 고개를 떨구고 있다.

견디기 힘들다. 견디기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통뿐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혼란스런 상황, 그 속에서 어쩌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책망, 비난… 하염없는 기다림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미치도록 화가 나는 자신의 무기력함.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버스에 몸이 실려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고 있다. 그곳이 목적지 지부티이기를 바라면서, 지부티에 가면 만사형통할 것 같은 생각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버스가 멈춰 선다. 여명이 밝아오는 것으로 보아서 동트기까지 한 시간여 남은 것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모래언덕 밖에 없다. 운전수는 아무런 말이 없고 승객들도 말없이 버스에서 내린다. 참고 있던 배를 움켜쥐고 무작정 버스 뒤로 멀리멀리 달려 고민을 해결했다. 하늘에는 지난번 하라르가는 길에 보았던 그 별무리들이 환한 빛을 밝히고 있다. 차가운 사막의 모래바람은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막에 차를 세운 건 이슬람의 기도시간 때문이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한 곳을 바라보며 모두 기도한다. 누구에게서도 불평은 나오지 않는다. 여기저기 땅바닥에 네탈라를 몸에 감고 잠을 청한다. 커피 세레모니 때 어깨에 둘렀던 네탈라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피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너무나 자연스런 그들의 옷과 의식은 이렇게 사막과 하나가 된다. 출발하기 전 되뇌이던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린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라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가려면 굽이 돌아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멀고 험하다. 사막에는 이정표가 없다. 운전기사도 말이 없다. 이 작은 버스가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길 바랄 뿐.

지부티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디레다와 숙소주인이 말한 여섯 시간에 모든 희망을 걸었지만 이미 사막의 이글거리는 해는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어 포기한지 오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배낭에는 약간의 비상식량이 있긴 하지만 꺼낼 엄두도, 꺼내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직 조금 남아있는 물에만 의지하고 있다.

탐험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대원들의 건강이 걱정이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거지?’라는 질문과 수도 없이 싸우고 있을 그들이 안쓰럽다. 한국인의 눈과 발로 커피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탐험한다는 사실 하나에 자신들의 전 재산인 열정을 쏟고 있는 대원들에게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에티오피아와 지부티의 국경지역에 도착한다. 국경을 넘으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아무리 많이 여행을 해도 변하지 않을 듯싶다. 지부티 국경을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 심사대 앞에 서서 애써 웃음 짓는다. 프랑스식 군모를 쓴 무표정의 심사원은 여권과 지부티 비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박물관 전시물로 쓰려고 탐험 내 수집한 유물로 터질 것 같은 배낭을 몽땅 풀어 헤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국경지역에서 작은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탄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여권 심사와 짐 검사는 국경지역을 통과하면서 이후로도 세 번이나 더 있었다. 버스 지붕 위에서 검색대로 오르락 내리락, 급기야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이곳에서 대원들은 에티오피아 난민 취급을 당하고 있다. 지부티항 입구에 제멋대로 지어진 난민촌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린다. 베트남 국기가 보이는 것에서 과거 이곳이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침과 점심을 건너뛴 대원들은 모두 탈진상태다. 국경에서 지부티 돈으로 환전을 못해 물 한 모금 사 마실 수 없다. 서로 어깨를 기댄 채 겨우 숨만 쉬고 있다. 국경으로부터 지부티 도심까지, 쏟아지는 뙤약볕과 국경에서 바꿔 탄 여인들의 수다로 정신병자가 될 지경이다. 소말리아로부터 탈출하는 난민들을 찾아내기 위한 검문은 그사이 십여 차례가 있었다. 지옥 같은 13시간을 보낸 후에야 지부티는 대원들을 맞는다.

소떼와 함께 홍해를 지나

1977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부티는 북으로는 에리트리아Eritria, 동과 남으로는 각각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인 지부티시티가 국가의 중심이요 거의 대부분인 도시국가로 홍해를 앞둔 지부티항의 지정학적인 위상으로 동부 아프리카의 물자들이 모두 집합하는 교역의 요충지다. 에티오피아에선 온 커피와 소말리아에서 온 소를 비롯한 가축들은 지부티 항에서 아랍세계와 유럽, 인도 등으로 전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국가 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5시가 다되어서야 지부티 주재 예멘 대사관에 도착하지만 대사관 업무시간은 이미 지났다. 입국 목적을 묻는 예멘 영사에게 커피의 역사를 찾아서 왔으며 내일 입국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영사는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의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30분도 안돼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의기양양했다. 잠시 전의 지옥은 까마득하게 잊는다.

예멘 대사관에서부터 항구까지 2.000 지부티 프랑으로 택시 요금을 흥정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일인당 2.000프랑이란다. 차량 위에 실린 짐은 또 별개란다. 세상 구석구석 험한 곳을 많이 여행하면서도 이런 심한 바가지를 쓰기는 처음이다. 구경꾼들이 모이고 기력도 없어 적당히 깎아서 주고 말았지만 바보가 된 느낌이다. 지부티를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가장 불쾌하며 냄새 나는 도시’라 평한 글이 문득 떠올랐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지부티 항에서 바라본 홍해. 이 바다를 얼마나 꿈꿔왔던가.

모카항Al Mukha으로 떠나는 배는 없다 한다. 정기 여객선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화물선도 언제 떠날지 모른단다. 다른 나라에서 화물을 싣고 지부티로 오게 되면 그 화물을 내려놓고 다행히 그 배가 모카로 짐을 싣고 떠나게 되면 얻어 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20시간이 걸린단다.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다.

막연히 꿈꾸어온 홍해. 저 깊은 산 짐마 농부들의 손을 떠난 커피가 굽이굽이 돌아 아디스아바바와 디르다와를 거쳐 이곳 지부티에서 잠시 머물다 홍해를 건너 모카로 건너간 여정. 오로지 그 여정을 따라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내고 지금 이곳까지 오지 않았는가.

내일 건너가지 못하면 일정상 예멘은 둘러볼 수도 없고 배가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으니 돈이 들더라도 비행기로 건너자는 생각을 했다. 급히 시내 항공사를 찾아 나섰다. 문명의 흔적들이 보인다. 바쁜 우리와는 달리 주민들은 나른한 발걸음이다. 시내 거리를 구경할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주민들은 낮선 동양인들의 행렬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한마디씩 건넨다. ‘곤니치와?’, ’니하오?‘.

정신 없이 바쁜 걸음을 옮기다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홍해는 물길로 건너야 하지 않아?”

“그렇지, 그래야지!”

도대체 지부티에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우리는 이곳에 왜 왔는가. 홍해에 대한 그 절실한 동경은 어디로 갔는가. 막상 이곳에 도착해서 홍해를 단 한 번도 느껴보려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로지 이 지긋지긋한 순간을 넘겨 편안한 시간을 갖기만을 원했다. 탐험을 무사히 끝마치고 시간 맞춰 돌아가는 데에만 신경이 모아져 있었다.

모진 질곡의 세월을 이기며 꿋꿋이 그 자릴 지키고 있는 홍해. 수많은 눈물과 그리움이 오갔을 홍해를 어찌 비행기로 건너려 했단 말인가. 참 어처구니없는 시간이었다. 하마터면 내가 왜 왔는지조차 모르고 여정을 마쳤을 절체절명의 순간이 지나간다.

식당에 들러 꼬박 24시간만의 저녁을 먹는다. 짙은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저녁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박물관 음성안내에 쓸 녹음을 한다. 식당 종업원은 몇 차례나 커피를 ‘분Bunn’이라 정확히 말한다. 에티오피아의 영향 덕이리라.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이들은 예멘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커피나 카화가 아닌, ’분‘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길거리에 카트가 넘쳐난다. 이슬람 전체가 커피를 마시는 일은 옛날에나 하던 일쯤으로 여기고 있다.

해가 뜨자마자 항구로 다시 나선다. 오후 4시에 배가 뜰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떠날 배가 오후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홍해를 향해 걷는다. 오후 4시까지 홍해를 가슴에 안아야겠다. 뜨거운 햇살은 여기서도 어김없다. 지부티의 홍해는 그리 맑아 보이지는 않는다. 항구 옆으로 작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홍해로 뛰어들었다.

그리도 보고 싶어 하던 홍해가 아니던가.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긴다. 짠맛이야 다를 게 없을 물맛을 애써 맛본다. 홍해에 몸을 담가 본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바다를 향해 외친다. 수 많은 이들의 애환이 서려있을 홍해는 말없이 파도만 만들어내고 있다.

니캅을 쓴 소말리아 여인 십여 명은 나흘째 배를 기다리고 있단다.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아프리카에서는 가능하다.

항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지부티 항 여객 책임자라는 브로커 알리Ali에게 적지 않은 웃돈을 예약금으로 얹어 주고 나서야 겨우 그들이 지정해준 대기소에서 배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대기소라 해야 선창가 창고의 그늘진 맨바닥이다. 어제 배편을 알아보려 들렀을 때 보았던, 검은 니캅Niqab으로 얼굴을 가린 소말리아 여인 십여 명이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그 대기소에 짐을 두고 기댄 채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여인들은 4일째 그렇게 배를 기다리고 있다 한다.

해적선 같은 목선. 우리는 소떼 500마리와 함께 홍해를 건너 모카로 향한다.

이제 한두 시간 늦는 것쯤 대수롭지 않다. 6시경, 보물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해적선 같은 낡은 목선 두 척이 항구로 들어온다. 그 중 한 대가 모카로 떠날 거라 한다. 부두를 오가는 사람마다 제각각 말이 달라 이마저 믿을 수가 없는데, 브로커 알리는 온데 간데 없다. 밤이 깊어간다. 또 다른 기다림의 연속. 밤 9시가 되어서도 떠날 기미가 없다. 부두에서 소떼가 목선에 실리고 있다. 500마리가 넘는 소떼를 옮겨 싣는 일은 자정이 지나서야 끝이 난다. 오후 2시부터 꼬박 11시간을 항구에서 기다린 끝에 소떼 가득한 화물선에 오른다. 새벽 1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도 이곳 아프리카에선 가능하다.

고요한 한밤중의 항구를 돌아보며 뺨에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바다가 주는 관대함이 나를 바로세우는 것 같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시장으로 명성을 드높였던 지부티, 랭보가 낙타 카라반으로 커피를 실어 날랐던 지부티, 그 지부티를 떠난다. 이곳 지부티에서 기억나는 건 길거리에 가득 넘치는 호객꾼들의 눈빛과 그들의 몸짓이 전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부다. 지부티는 아프리카 땅이면서도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한밤중의 항구는 고요하다. 갑판 위에서 불빛 가득한 항구를 뒤돌아보며 뺨에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이곳에는 왜 왔으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바다가 주는 관대함일까, 드디어 떠난다는 홀가분함일까? 무언지 모를 너그러움이 나를 바로 세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