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드] 모든 커피는 모카로 통한다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모든 커피는 모카로 통한다

홍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모카 항으로

홍해는 평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넓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다 홍해는 남북으로 2.300km, 동서로는 넓은 쪽이 360km에 이르는 큰 만이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하는 이야기를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도를 펼쳐놓았을 때 금세 손에 닿을 것 같았던 모카 항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망망대해다. 이슬람 여인들과 한데 섞여 갑판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들려온다.

500마리의 소떼와 함께 인도목선을 타고 홍해를 건넌다.

홍해의 태양이 눈부시게 떠오른다. 구름 사이로 솟은 붉은 태양은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바다 속 해조류의 영향으로 물빛이 붉게 보인다 해서 홍해라 부른다지만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붉은 물빛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장엄한 광경을 놓칠세라 꾀죄죄한 몰골로 졸린 눈을 비비며 조타실 위로 올랐다. 감격스럽다. 그 옛날 커피의 길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찬란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생각한다. 이런 걸 행복이라 하겠지. 희망이라 하겠지.

날이 밝자 아름다운 홍해 위에 떠 있는 지저분한 화물칸의 소떼 550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이 쏟아낸 배설물로 축축해진 바닥에 배멀미를 견디지 못한 한두 마리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선원들은 달려가 필사적으로 녀석들을 일으켜 세운다. 좁은 화물칸에 주저 앉으면 그 만큼 다른 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 소들의 큰 싸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큰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녀석들의 처지가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슬람여인들과 인도선원들과 함께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탐험대는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한 잔 커피가 간절해, 준비해갔던 커피를 인도선원에게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지부티 사람들의 속임수 탓이었을까, 인도선원의 친절을 잠시 오해했지만 그가 순수한 뱃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홍해의 아침 풍경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마구 타버렸던 것. 커피 맛은 내 기대와는 달랐지만, 밝은 웃음의 인도선원들, 검은 베일의 예멘, 소말리아 여인들과 하나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은 그 커피 덕이 아니겠는가.

정오쯤 도착할 수 있으리란 상상은 애당초 무리였다. 하지만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 작은 고깃배들이 하나 둘 보이고, 갈매기가 머리 위를 난다.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 너머로 전설의 모카 항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16시간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모카 항에 도착하고 있다. 가슴 속에 그려왔던 모카 항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쪽빛 바닷물이 수정처럼 맑다. 항구 한 켠에 버려진 낡은 배가 처량하게 떠 있다.

오리지널 모카커피를 찾아

16시간의 항해 끝에 가슴 속에 가득 그려온 모카 항에 도착했다.

항구에 도착해 처음 만난 세관원은 하얀 천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초승달 모양의 황금빛 전통칼 잠비아Jambiya를 배에 차고 고압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 시바여왕의 나라, 아라비아의 신비로 가득한 나라라는 실감이 난다. 보는 사람 모두 한쪽 뺨으로 커다란 혹이 나있어 의아했지만 곧 오후 시간이면 예멘 사람 누구나 카트를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티오피아를 떠나기 전부터 줄곧 보아오던 카트이지만 이렇게 공공연하게 출입국 심사대의 세관원부터 심지어 경찰에 이르기까지 한입 가득 혹을 만들어 씹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목선이 닿은 곳은 모카 신항이다. 배에서 본 옛 모카 항은 백사장을 중심으로 신항의 반대편에있어, 택시로 1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차창 밖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비로소 모카 항에 발을 딛는다. 사람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도의 좋은 기후 탓에 ‘녹색 예멘Green Yemen’이라 말하던 행운의 아라비아는 역사 속에 묻힌 듯하다. 바닷가에는 먼 곳에서부터 쓸려온 지푸라기며 비닐봉지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있고, 그 근처를 들개 떼가 어슬렁거린다. 늑대를 연상시킨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옛 건물들의 잔해 사이로 기껏해야 하나 남은 초라한 커피점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이 제법 큰 것으로 보아 옛 영화를 짐작할 뿐, 과거는 이제 전설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황량하다는 말도 턱없이 부족하다.

허물어진 건물, 뒹구는 주춧돌, 인적이 드문 거리. 마을은 마치 폭격을 당한 것만 같은 모습이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이고 야생 커피를 처음으로 경작한 곳은 예멘이다 800년경 에티오피아의 ‘카파’지방에서 발견된 ‘분’은 이슬람 수도사들에 의해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16세기 초에는 각성 작용에 대한 종교적 논란이 있었지만, 수도승의 잠을 쫓는 약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비로소 이슬람의 음료가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카파’에서 온 ‘분’을 아랍 사람들이 그들 발음으로 ‘카하와Qahwah’라 부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기독교 사회에서는 1605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서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다.

유럽의 커피는 모두 예멘의 모카 항으로부터 수입되었다. 예멘의 수도 사나Sanna 서부 산악지대에서 재배되어 낙타와 노새로 옮겨진 예멘 커피와, 지부티 항을 통해서 온 하라르를 비롯한 에티오피아 커피가 모카 항에 모여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 사람들은 예멘 커피, 에티오피아 커피의 구분 없이 이 두 커피를 모두 모카라 불렀고 지금까지 혼돈 속에 그렇게 부르고 있다. 굳이 따져 말하자면 ‘에티오피아 모카’, ‘예멘 모카’가 맞을 것이다. 이후로는 친근감과 편리성을 내세워 ‘커피’자체를 뜻할 때도 ‘모카’(A Cup of Mocca)로, 인도의 자바Java에서 커피가 재배된 뒤로는 커피를 ‘자바’(A Cup of Java)로 부르고 있다.

모카 항에 하나 남은 커피점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인스턴트 재료로 모카커피의 향을 되살릴 수 있을까?

19세기가 될 때까지 영화를 누리던 모카 항은 커피 주요 생산국이 남미와 아프리카로 확대되면서 오늘날까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크지 않은 동네를 몇 바퀴를 돈 후에 커피점에 들렀다. 나무 간판에 ‘카페 주테, 모카Cafe Zoute. Mocha’라 써있다. 커피 한 잔을 청하자 22살의 청년 사장 타렉Tarek Ali Zoute은 별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이리저리 살피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커피를 만들어낸다. 언제부터 이 커피점이 생겼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잘라 말한다. 아쉽다. 이 젊은 사장은 낡고 시시콜콜한 역사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생업에 열중인 그를 두고 역사 의식이 없다며 책망할 수 있겠는가.

사장 타렉은 대충 헹군 유리잔에 인스턴트 커피를 두 스푼 넣은 뒤, 끓고 있는 양은 주전자 하나를 골라 뜨거운 물을 붓는다. 뚜껑을 언제 땄는지 알 수 없는 깡통에서 연유를 가득 붓는다. 계핏가루를 듬뿍 뿌리더니 젓지도 않고 건네준다. 멀건 모카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허탈한 마음이다. 근사한 바닷가의 카페 테라스에서 모카 항을 바라보며 진한 모카 커피를 한잔 마셔보고 싶었던 꿈은 황망히 날아갔다. 이 좁고 낡은 공간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커피의 역사와 숨결이 배어 있는 모카 항 유일의 커피점에서 마시는 오리지널 모카커피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어둑해질 무렵 폐허가 된 동네를 다시 돌아본다. 뼈대만 앙상한 2층 건물에는 아르데코의 기학학적 감각이 묻어있어 과거의 영화가 비치는 듯하지만, 거친 모래와 굵은 돌멩이만 나뒹구는 골목길, 그 위를 지나는 나귀와 오토바이, 덕지덕지 붙은 선거용 포스터, 우뚝 솟았지만 왜소해 보이는 첨탑. 그 어디에서도 지난날의 화려함은 없다. 허물어진 잿빛 건물 너머로 홍해가 보인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다. 마을 안 종교적 분위기는 이슬람의 정신문화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자랑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잘 알려주고 있지만, 모카 항이 보여주는 오늘의 모습은 황량함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역사는 지금도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카 항의 영화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모카 항을 떠난다. 그리도 긴 시간, 그리도 먼 길을 지나 찾아온 모카 항을, 불과 네 시간 남짓 둘러보고 떠난다. 모카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던 계획은 마땅히 잘만한 숙소를 찾지도 못했거니와 으스스한 분위기가 두렵기도 해 아쉬움을 접어둔 채 옛 예멘의 수도였던 타이즈Taizz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두워진 모카 항을 돌아다보니 미련만 짙어진다. 쓸쓸히 밀려드는 홍해의 파도 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꼭 다시 돌아오리라.

인구 30만의 타이즈에서 아침을 맞는다. 산꼭대기에 빽빽이 들어찬 집들이 인상적이다. 혼자 모처럼 느긋하게 아침 산책를 한다. 검은 니깝의 여고생들이 등교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이다. 검은 니깝에 감춘 눈동자는 활력이 넘친다. 오거리 교차로에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톱이며 망치며 긴 막대기에 연결한 페인트 롤러를 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가오는 차를 보며 흥정을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딜 가나 다 비슷하다. 노점에서 커피 한잔과 갓 구운 빵 한 조각을 시킨다. 길거리 커피지만 막 우려내서 그런지 신선한 맛과 향이 난다. 커피는 미리 갈아둔 원두를 쓰고 있다. 커피는 향료가게에서 사다 쓴다고 한다. 바로 옆 향료 가게를 기웃거리니 안에서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곱게 갈아놓은 커피 두 종류를 얇은 비닐에 500g씩 담아 팔고 있다. 아침부터 빈손으로 나오기가 머쓱해 그 중 조금 비싼 예멘 모카 마타리를 산다. 말랑말랑한 촉감이 좋다.

문명의 슬픈 그림자, 아덴

모카 항과 더불어 커피를 세계로 전한 또 다른 관문은 아덴 항. 우리는 아덴 항으로 가서 커피의 흔적을 찾기로 했다. 타이즈로부터 남동쪽으로 135km 떨어진 아덴까지 합승 택시를 탄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사막을 달리는 합승택시는 운전수를 빼고도 8명이 타야 하기에 비좁고, 천장까지 낮아 내내 웅크리고 가야 한다. 그렇지만 이미 하라르, 디르다와, 지부티, 홍해의 무수한 기다림을 맛본 바 있지 않던가. 호사스런 택시를 타고 불평한다는 것은 이번 여정의 성격에 걸맞지 않는다.

아덴으로 가는 길은 땅의 2%만이 경작이 가능하다는 남부 산악지대를 지난다. 그 동안 익숙했던 아프리카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와 양은 온데간데 없고 어딜 가나 반겨주던 아이들의 환호가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바위산은 멀리서 우릴 에워싸듯 겹겹이 솟아있고 주위로는 갈색의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군데군데 나무가 보이기는 하지만 겨우 초록이라는 색깔의 존재만 알릴 뿐 숲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가시덤불이 자라 나무가 된 것은 아닐까.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와 이슬람의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uta가 13~14세기에 방문한 기록을 남겨 널리 알려지게 된 아덴은, 커피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지도록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무역항이다. 고대 세계의 주요 통상로였던 아덴은 1869년 이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후 유럽과의 교역이 더욱 활발해졌고, 오늘날에는 아프리카, 유럽은 물론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자유무역 항구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덴항

갯벌은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뻗어있다. 홍학과 노랑부리저어새가 바닷가를 배회하고 있다. 멀리 반짝이는 바닷물과 그 위를 나는 새들이 평화롭다. 한가로운 아덴의 첫인상은 ‘예멘 모바일Yemen Mobile’이라는 통신회사의 영어. 아랍어의 선전 문구가 큰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덮고 있는 데서 바뀌어 버린다. 항구로 향하는 길 오른쪽으로 아덴 자유무역항 표지판이 크게 눈에 띈다. 시내로 들어서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바위산이 뜨거운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길거리로 뱉어내는 듯 하다. 아덴의 커피집들을 둘러보기 위해 차를 한 대 빌린다. 영어가 통하지 않지만 문제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카트 씹는 사람들이 보인다. 운전수도 입안 가득 풀을 뜯어 넣고 있다. 자동차 기어박스 옆에 가득 카트가 놓여있다. 하라르로 향하던 아마레와 그의 조수가 씹던 카트를 보며 밤새 불안에 떨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모카커피를 찾아 나서면서 카트를 얘기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사실 예멘에서 카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카트는 커피가 그렇듯 에티오피아로부터 왔다고 전해진다. 오래 전부터 종교적인 약용식물로 전해오던 것이 오늘날에는 예멘인의 월수입 30%를 카트 구입비로 쓸 만큼 일반에 널리 퍼져있다. 오후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 연한 나뭇가지 잎을 탁구공 정도의 크기가 될 때까지 많이 넣고 껌처럼 씹어 그 즙을 음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정서적인 흥분을 느끼게 되는데, 술이 금지되고 있는 이슬람에서 카트를 통해 정신적인 힘을 얻는 것은 자신들만의 고유문화이며 나아가 신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덴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어디를 가야 전통의 모카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아덴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통 커피점을 찾아 나섰지만 모카커피를 팔고 있는 집은 찾을 길이 없다. 1930년 이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구 아덴 중심가의 커피점들은 이미 전통 커피점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현대화 되어버렸다. 그곳 메뉴에서 모카커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 앞 모퉁이에 유난히 낡아 보이는 메단Medan을 찾아 들어갔으나 1955년 세워졌다는 말만 있을 뿐 커피는 팔지도 않는다. 커피잔에 555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반가워 들어가려다 자세히 보니 커피잔이 아닌 홍차 잔이다. 밀크티가 맛있다며 맛보기를 권한다.

물어물어 시장길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가로등이 드물고 간판불도 꺼져있어 음침해 보이지만 더위를 피해 놀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줄지어선 3층 건물의 이슬람 문양 창틀이 독특하다. 시장 골목길 한가운데 모스크가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셔터가 반쯤 닫힌 상가가 눈에 띈다. 간판이 놓여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인들의 선거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의 무하마드Muhammad Abul Maged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셔터를 올리고 대여섯 평 남짓한 커피점으로 들어간다. 코란의 기도문만이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다. 조용하던 가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통 모카커피를 찾아 왔다 말하자 할아버지는 이내 어깨를 으쓱거린다. 100여년 전 이 지역이 시장의 중심가이던 시절, 선대 할아버지가 하던 것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일흔이 되도록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는 누구도 이 커피점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제대로 된 모카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다 하자 불 꺼진 화덕에 불을 지핀다. 흔들거리는 나무탁자, 이빨 빠진 커피 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무엇 하나 새것은 없다.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중얼거린다. 큰 주전자 두 개 중 하나에 담겨있는 홍차를 다른 주전자에 옮겨 붓는다. 반쯤 빈 주전자에 커피가루 한 움큼을 붓고는 홍차와 함께 끓인다. 여기서도 설탕과 계핏가루가 들어간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커피점을 일흔이 되도록 지키고 있는 무하마드 할아버지가 끓여준 모카커피.

아덴의 전통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천천히 음미한다. 우울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모카커피의 맛은 이곳에도 없다. 커피 맛이라기보다는 숭늉에다 설탕 탄 어정쩡한 맛이지만, 할아버지에게 내색할 수는 없다. 찌그러진 커피잔과 주전자도 함께 구입하며 감사를 표한다.

모카커피의 본고장 예멘에서 제대로 된 모카커피를 맛볼 수 없다. 적어도 예멘인들에게 있어 커피는 카트와 밀크티에 한참 뒤쳐져있다. 예멘 커피의 생산량은 점점 줄고 수출은 늘려야 하기에 커피 가격이 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커피가 멀어지는 이유가 단순히 비싼 커피값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카트를 끝낸 후 찬물로 입안을 헹구고 밀크티를 마시면서 저녁 기도를 드리는 그들의 문화가 주요 원인이다. 농민들도 너나없이 커피농사를 마다하고 카트를 심는다. 커피보다 몇 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이토록 카트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는 카트를 마약에 비유한다. 그 옛날 기독교 사회에서 ‘커피는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며 배척했던 기록을 떠올린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