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커피의 역사] 한국 최초의 다방, 남대문 역 기사텐

Posted on 2014년 11월 13일 Under archives

한국 최초의 다방, <br>남대문 역 기사텐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 최초의 다방은 1923년 이견二見(후타미)로 알려져 있었다.<br>그러나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다방에 대한 기록은 19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최초의 다방인 남대문역 다방 내부, 유니폼을 잘 차려 입은 직원이 흰 천의 식탁보로 깨끗이 정돈된 테이블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술국치로 일본에 강제 합병된 조선에서 커피는 기사텐喫茶店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본정(지금의 충무로)에서 종로로,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개화에서 모던으로, 예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근대 낭만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경성의 본정은 이미 일본인 천지였다. 1910년대 본정에는 한옥과 판자로 만들어진 일본인 상점이 줄을 이어 들어섰고 이전까지 단층이 주를 이루던 상점가는 20년대에 와서 일본식 2층 목조상점으로 모습이 변해갔다.

당시는 신문물이 쇄도하는 격동의 시대였다. 서재필의 독립신문이 1896년 창간되고 한성전기회사가 1898년 설립되어 전차, 전등, 수도 설치사업을 시작했으며 한강철교는 1900년에 이미 준공되었다. 1902년 손탁호텔이 영업을 개시했고 1904년에는 경부선이 완공되었으며 1908년에는 이화학당에서 메이퀸 대관식행사가 시작되었다. 1912년에 서울에서 택시영업이 시작되었고 1914년에는 조선호텔이 개업했으며 1920년은 조선, 동아일보, 개벽, 폐허가 창간되었다.1)

한국 최초의 다방에 대한 기록

그러나 커피역사만큼은 1923년 이견二見(후타미)가 한국 최초의 다방이라 알려져 있었을 뿐 손탁호텔 이후 20여년간의 기간이 지금껏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다. 적어도 1860년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커피의 역사가 다른 문물이 급속히 도입되어 전파되는 시기에는 정작 아무런 흔적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해하기 힘든 공백은 2011년 겨울,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이 한국 최초의 다방 ‘남대문역 다방’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면서 마침내 메워지게 되었다.

‘1904년 2월, 당시 스물 일곱의 나이에 조선으로 건너와 경성의 잡화점 무라타村田상점에서 일본군에 식료품을 공급하는 종업원이었던 마츠이 카이치로松井嘉一郞는 1906년 3월 이 상점을 인수하여 영업을 하던 중, 1913년 4월부터는 조선 총독부 철도국 남대문역 기사텐 및 식당차용 물품을 납입하였다.’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기사텐(喫茶店)은 다방을 일컫는 일본식 표기이다. 이 사람이 직접 다방을 운영했던 인물은 아니나 1913년에 남대문역에 다방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1915년 조선철도국에서 펴낸 「조선철도여행 안내」책자. 남대문역 다방의 내외관과 더불어 당시 남대문역 일대의 모습과 기차 식당칸 전경, 역구내 식당 등을 소개하고 있다. 철도박물관 소장.

남대문역 다방에 대한 기록은 1915년 조선철도국에서 펴낸 「조선 철도여행 안내」라는 문고판 책자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책 한 쪽 페이지에는 “남대문역 기사텐 내부”라는 글귀와 함께 유니폼을 잘 차려 입은 직원이 흰 천의 식탁보로 깨끗이 정돈된 테이블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한 내부 사진과 “남대문역 기사텐”이라 쓰인 외부 입구 사진이 선명하게 나와 있다. 「조선철도여행안내」에 의하면 ‘1913년 4월부터 물품을 남대문역 기사텐에 납입했다’는 기록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철도의 식당영업이 그동안 청부제(위탁경영)로 운영되던 것을 총독부 직영체제로 개편된 탓에 이 사람이 비로소 납품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서울 철도의 시발역은 현재의 서울역이 아니었다. 오늘날 ‘이화여자고등학교 서남쪽의 철도 관사가 있었던 중구 순화동 1번지 일대에 세워진 서대문역’ (당시 이름은 경성역)2)이 서울 최초의 철도역이었고. 이 서대문역은 1919년 폐쇄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남대문역은 1900년 신축된 후 1923년에 경성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가 1947년 신축과 함께 현재의 서울역으로 불리게 되었다.3)

남대문역 다방의 개업 시점

1909년 11월 3일 발행된 황성신문은 조선최초의 다방인 남대문역 다방의 개업일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1913년 남대문역 다방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었으나 언제 처음 개업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불과 지난 10월까지도 미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이 한국커피역사전을 준비하던 중 남대문역 다방의 개업을 알리는 짤막한 기사를 발견하면서 개업시점에 대한 궁금증 역시 풀리게 되었다. 1909년 11월 1일 남대문역에 기사텐이 개업하였다는 것이다.

“茶座開設 南大門停車場에 一日붓터 喫茶店을 開設얏다더라(다좌개설, 남대문 정거장에는 1일부터 기사텐을 개설하였다더라)”<황성신문, 1909. 11. 3>

이와 함께 남대문역과 기사텐의 이용현황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 역시 발견되었다. 1913년 8월 7일자 매일신보는 ‘승강객과 기사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7월중 남대문역의 승강객은 합계 6만 5천 5백 10명이고…(중략)구내 기사텐은 7월중 음식객 743명 중 취입금(총수입금) 453원 4전이고 이중 식료(음식) 71원 50전, 식료 256원 75전, 음료(커피와 차) 109원 5전, 연초(담배) 14원 45전, 잡료(잡화) 1원 29전이라더라”(식료가 중복해 집계된 이유는 알 수 없다)

애초 남대문역은 일제가 러일전쟁을 치르기 위해 경의선을 설치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크게 있었던바 주로 일본인들이 이 기사텐을 이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많은 조선인들이 이용했을 개연성 또한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전 수요예상에서 철도 1, 2등칸은 일본인이, 3등칸은 조선인, 청국인이 주로 이용할 것으로 보았으나 막상 개통 후 결과는 조선, 청국, 일본인 순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남대문역 기사텐에는 지방을 자주 오가던 조선 관리나 지방 상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커피, 본격적인 상업화에 들어서다

조선철도여행안내에 수록된 남대문역 다방의 입구 모습. 문 위에 기사텐이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1884년 1월 퍼시벌 로웰이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전후로 커피는 상인과 고관대작들, 왕실을 중심으로 음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불호텔과 손탁호텔 등 서양식 호텔이 출현하면서 커피는 상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커피가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과 서양 문물에 밝은 소수의 인사들이 호텔의 주 이용층이었다는 점에서 커피의 판매 대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커피의 판매가 숙박과 음식을 주목적으로 하는 호텔의 부속적 기능에 머물렀던 점 역시 커피의 본격적인 상품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할 것이다.

1909년 남대문역 다방이 개업하면서 드디어 커피는 진정한 상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커피와 차를 판매하기 위한 독립적 공간이 운영되었고 역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승객을 대상으로 커피의 판매가 이루어졌다. 커피가 상품화, 대중화의 길에 완전히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흔히 일본의 커피 역사가 한국보다 170년 앞섰다고 말한다.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나가사키長崎에서 네덜란드와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1700년경 일본에 커피가 최초로 소개된 반면 한국은 그보다 한참 늦은 19세기 후반에야 커피가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피가 일본 전역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54년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을 한 에도 말기 이후부터이다.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가히차칸可否茶館’ 역시 우리의 남대문역 다방보다 단 21년 앞선 1888년에야 도쿄에 문을 열었다.

최초의 커피하우스 자리에 이를 알리는 표석을 세워놓은 일본과 아직 한국인이 경영한 최초의 다방 위치조차 어딘지 모르는 한국, 커피역사에 대한 자료 조사와 정리가 충분히 이루어진 일본과 제대로 된 연구 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근거 없이 양국 간 커피 역사의 차이를 170년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억측하자면 우리의 커피 역사 역시 서양인들이 조선을 오가기 시작한 1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남대문역 다방보다 더 오래된 다방이 존재했을 개연성 역시 충분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부터라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단초를 하나하나 추적하고 발굴해 내어 우리의 커피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해나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김원모, [근대 한미 교섭사] (홍익사, 1979)
  • 손정복, [일제강점기 도시화 과정연구] (일지사, 1996)
  • 서울 시립대 박물관, [조선 근대와 만나다] (2006)
  • 박도, [일제강점기] (눈빛 아카이브, 2010)
  •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 사업공동추진위원회, [100년전의 한국사] (휴머니스트, 2010)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경술국치100년] (2010)
  • 한국철도공사, [철도주요연표] (2010)

주석

1
신문박물관, [사회사 연표]
2
중구문화원, [정동 역사의 뒤안길] (상원사, 2008,) p.319
3
철도박물관, [한국철도사와 서울역]